[안동유 세상만사]<58>21세기와 통찰력
[안동유 세상만사]<58>21세기와 통찰력
  • 하종숙 기자
  • 승인 2016.02.22 12: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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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21세기와 창의성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동명의 헤밍웨이 소설을 모티브로 작사했다고 하지만 사실 소설 제목은 ‘킬리만자로의 눈’이 정확한 이름이다.)

가사 중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토론 아닌 토론을 할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과거엔 성실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직장에 나와서 남보다 부지런하게 일을 시작하고 밤늦게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이 훌륭한 모범 직장인이었다.

90년까지는….

90년대 들어 갑자기 곳곳에서 창의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성실성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엔 한 시간이라도 더 기계를 돌리고 수출품의 매무새를 한번이라도 더 봐서 상품의 가치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하고 산업구조가 단순히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많은 제품의 수출로 바뀌면서 성실성은 더 이상 경제의 핵심요소가 아니게 됐다.

다시말해 노동집약적 생산에서 기술집약적 생산으로 바뀌면서 성실성이 아닌 창의성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언뜻 좋은 직장인처럼 비치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남보다 사무실이나 공장에 더 머물면 냉난방이나 전기 및 부대시설 이용에 따른 비용이 더 들게 된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이 된 것이 화제가 되는 세상이 됐다. 푹 쉬고 주말에 즐겁게 보낸 사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늘 야근을 하는 사람은 삶의 피로도가 증가하여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히려 생산성을 까먹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양으로 승부하는 시절이 한참 지나서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즐겨 했던 말 중 하나다.

그러면 21 세기는 어떤 능력을 요구할까? 아마도 통찰력이 아닌가 한다. 직관력과 더불어….(통찰력과 직관력은 동전의 양면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듯하다.)

천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면서 그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통찰력의 산물일 것이다.

통찰력의 실천 덕목은 아마도 일에 대한 식견과 사람에 대한 안목일 터, 모름지기 리더는 식견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다다익선의 고사에서 보듯 한신이 병사를 움직이면 한고조 유방은 장수들을 움직인다.

통찰력은 관리자의 관리자가 꼭 가져야 할 덕목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덕목이다.

주변에 설렁설렁 일하는 듯 안 하는 듯 여유있게 지내면서도 할 것은 다 하고 남보다 더 쉽게 잘하는 사람이 꼭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답을 찾아낸다. 일을 통찰하면서 내려다 보기 때문에 한눈에 전체를 보고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생이란 드라마의 주인공 장그래가 운항하던 배가 파손된 걸 알고 단순히 생각해 용접하면 된다고 한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 된 것도 통찰의 결과다.

성실성은 열심히 해서 속도를 높이지만 통찰력은 전체를 보고 불필요한 과정을 제거하고 최소한의 필요한 요소들만 수행하는 것이다. 빨리하는 것이 빠르겠는가 안 하는 것이 빠르겠는가?

오죽하면(노벨상이지 싶은) 유명한 상을 받은 논문의 주제가 ‘제도의 발전이 기술의 발전보다 생산성을 향상시킨다’이겠는가?

통찰력은 제도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 기업인 노키아가 한순간에 몰락한 것은 통찰력이 부족해서다.(직관력도 당연히….)

해 보고 결과를 검증하고 판단하면 이미 한참 늦어지는 시대다. 핸디폰의 매출이 세계 제일이라는 안이함으로 스마트폰의 거대한 조류를 직관적으로 알아채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물론 창의성도 중요하고 성실성이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성실성의 정의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아침부터 밤늦게 일하는 게 성실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성실성의 시대는 갔다.

이건희 회장이 일을 배우던 젊은 시절을 빼고 열심히 일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21세기의 성실성은 책임감이지, 시간 개념이 아니다. 그런 성실성의 바탕 위에 창의성이 꽃피고 통찰력이 실행을 이끄는 것이 21세기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나위없이 통찰력이다.

21 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하는지는 노래방에서 외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지 물어봄으로써 판단해야 한다. 아니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외로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