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 세상만사]<55> 피그만의 발가벗은 임금님
[안동유 세상만사]<55> 피그만의 발가벗은 임금님
  • 국토일보
  • 승인 2016.01.18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동유 팀장 /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정보지원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피그만의 발가벗은 임금님

어린 시절이나 읽고 교훈으로 배우던 동화나 우화를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씩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많다.

이솝 우화를 보며 여우의 어리석음에 웃기도 하고 그 영악함에 탄복하기도 했던 그 때의 일이 새삼 떠오르는 건 왤까? 아마도 살아가면서 그냥 동화라고 치부하며 지나치기엔 너무나도 닮아 있는 일들이 많아 그럴지도 모른다.

지력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나 읽고 좋은 심성과 품성을 키우라는 그렇고 그런 시시껄렁한 동화나 우화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말이나 소인, 대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인 걸리버 여행기는 이해하기엔 어렵고 그저 신기한 이야기일 뿐인 것이라고 여겼지만 토리당과 휘그당의 냉엄한 정치 현실을 풍자한 정치 소설이라고 평가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우화나 동화의 대표적인 것이 발가벗은 임금님이다. 줄거리는 다 아는 것이니 생략하고….

우리는 이 동화를 보며 어리석은 임금이 체면만 중시하다가 사기꾼에 의해 속았지만 마음이 맑고 순수한 아이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만인 앞에 우스개가 된 걸로 기억한다.

아이 때는 깔깔대며 재밌어 하고 어른이 돼선 실소를 머금으며 안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비단 동화책 속에나 있을까?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일이 설마 현실에서 있으랴?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재밌는 이야기로 꾸며냈을 뿐이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받던 케네디 대통령의 사례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피그만 사태다.

쿠바가 카스트로에 의해 공산 혁명을 완수하고 미국의 적성국가로 바뀌자 소련과 냉전의 와중에 있던 미국은 전전긍긍하게 됐다. 미국의 뒷마당에 가라앉지 않는 소련의 거대한 항공모함이 떡하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공산정권에 반대하거나 이념 또는 이해관계가 달라 가까운 미국으로 망명한 많은 쿠바 난민들이 있었다. 케네디 정권의 참모가 이들을 규합해서 군사훈련을 시킨 뒤 쿠바로 침투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뒤엎고 쿠바를 민주화(사실 친미 자본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백악관 참모들의 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냉엄한 판단없이 소아병적 소 영웅주의적 주장만 난무했고 큰 기류가 그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듯한 쪽으로 흘러 감히 거기에 이성적 판단으로 실패의 가능성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것은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를 앞두고 내기를 걸 때 객관적 전력의 분석을 도외시하고 무조건 한국의 승리에 돈을 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고 싶다”와 “이다”를 구분 못한 것이다.

백악관 회의에서 감히 반대의견을 내놓으면 카스트로의 간첩이나 되는 듯한 분위기로 누구하나 서로 눈치만 볼 뿐 솔직한 의견을 못 내놨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감상적인 의욕만으로 작전을 추진한 결과 피그만에서 100여 명이 죽고 1,000여 명이 쿠바군의 포로가 됐다. 이는 지금도 미국의 치욕일 뿐 아니라 정치나 기업 경영에서 참고할 안이하고 잘못된 의사 결정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꼭 발가벗은 임금님을 보는 기분이다.

임금님은 어린 아이가 뒤늦게라도 소리쳐서 솔직함을 되찾았지만 아직도 많은 조직의 상사들은 자신이 발가벗은 줄 모르고 으스대며 길거리를 행차하고 있다.

모두 눈치를 보며 아첨하기에 바쁘고 임금님에게 찍힐까봐 두려워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어느 교회에서 이천 년이 되면 말세가 온다고 하면서 1999년 말 쯤의 예배시간에 저기 천사가 와있다고 손으로 가리키며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하자 모두 아멘을 연발하며 보인다고 하는 걸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다.

독재는 이렇게 공고히 자리를 잡는다. 모두를 어리석은 광기에 빠지게 한다.

우민화와 권력의 눈치보기. 동화나 우화는 그 엣날의 재밌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살아서 우리를 아프게 채찍질하는 교훈의 회초리다.

인간이 똑똑한 척해도 멀쩡히 바보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발가벗은 임금님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준다.

어린애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생각하자. 교만해서 어리석어지면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된다.

진리는 평범하고 평범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