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먼지’ 석면, 대규모 재앙 현실
‘죽음의 먼지’ 석면, 대규모 재앙 현실
  • 강완협 기자
  • 승인 2008.03.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용시설 광범위 국민 건강 위협

잠복기 20~40년 악성중피종·암 등 유발

70년대 본격 사용 2010년쯤 피해자 정점

 

석면이 인체에 대한 유해성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이후로 최근 새롭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석면은 직경이 0.02~0.03㎛,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 1 크기로 어떤 자재와도 잘 융합, 석면만 섞으면 견고하고 튼튼해 한때는 완벽한 ‘신의 물질’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슬레이트, 석고보드, 단열재 등 건축자재를 비롯해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방화복, 방독면, 전기절연재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무분별한 사용이 어느새 석면 재앙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현재는 ‘죽음의 물질’로 둔갑,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석면 노출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 신설동역.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석면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석면에 대한 대규모 피해는 우리보다 앞서 사용했던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먼저 나타났고, 한국 등 후발 산업국가에서는 최근 서서히 피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 석면공장이 있었던 부산 연산동, 장림동, 덕포동을 비롯해 충남 홍성군 등지에서 석면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 최근 서울 지하철 2~4호선 117개 역사 가운데 17개 역사에서 석면이 검출돼 지하철 이용 시민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석면은 보통 20~40년의 잠복기를 거쳐 악성중피종, 석면폐, 폐암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 석면으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은 현재로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며, 사망률은 100%로 대부분 1년 이내에 사망한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에서도 그 심각성을 인식해 정부 합동으로 대대적인 석면관리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 석면은 어떤 물질…

 

석면은 직경이 0.02~0.03㎛의 천연 광물로 청석면, 갈석면, 백석면, 악티노라이트, 안소필라이트, 트레모라이트 등이 있다. 단열성, 내화성, 내마모성이 뛰어나 벽, 천장재, 표면재, 각종 배관·덕트의 보온목적으로 사용되는 단열재, 바닥타일, 천장보드를 비롯해,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헤어드라이어, 세탁기와 같은 전자제품의 전기절연재 등 다방면에 사용됐다.

 

몸 속에 들어가면 단단한 물질의 특성상 사라지지 않고 조직과 염색체를 손상시키며, 석면폐, 폐암, 악성 중피종 등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석면에 노출되면 20~40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며, 치사율은 100%로 아직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우리보다 앞서 60~70년대 석면으로 인한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석면의 생산·수입·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70~80년대 석면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심각성은 최근에 들어서야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7년 청석면·갈석면의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내년에는 모든 석면 제품에 대한 사용이 금지된다. 우리나라는 사용 시점을 감안할 때 오는 2010년이면 피해자가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석면환경협회 구기영 이사장은 석면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건물내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중인 곳, 재개발·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인 곳은 무조건 피하라”고 권고했다.

 

 

서울지하철 17개역 노출 심각 피해 우려

국내 처리기준·전문업체 전무 위험성 가중

 

◆ 어디에 얼마나 사용됐나?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전에 지어진 국내 건축물 가운데 88%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환경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붕재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슬레이트’의 경우 석면함유율이 8~14%로 2004년 11월까지 생산됐다.

 

‘천장재’(일명 텍스)는 석면함유율이 3~6%이며, 2005년 3월까지 생산됐고, 일반 건축물 내부의 사무실 및 화장실 칸막이용으로 주로 사용된 내장 벽재(밤라이트/나무라이트 등)는 석면함유율 10% 내외로 2002년 3월까지 생산됐다.

 

건물 외장용 자재로 사용되는 ‘석면 압축 외벽재’(일명 ‘슬레이트 사이딩’)는 석면함유율 8~14%이며, 지난해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생산 중단시기로 볼 때 건축 현장에서는 최근까지도 석면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이 한창이다. 시민단체들은 한창 진행중인 재개발·재건축 건물들이 지어진 시기로 볼 때 석면자재가 대량으로 사용됐으며, 현재 국내에는 마땅한 처리기준과 시설 등이 없어 석면 노출로 인한 위험성을 잇달아 경고하고 있다.

 

석면피해에 대한 우려는 재개발, 재건축 현장 뿐만 아니다. 서울 시민 대다수가 이용하고 있는 지하역사도 심각하다. 지하공간, 특히 지하상가를 비롯해 지하철 등에서의 공기중 석면 검출문제는 지난 몇 년 간 시민단체 등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공기중 검출 농도가 기준치 이하라는 이유로 무시돼 왔다.

 

전문가들은 공기중 석면 농도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기준치 이하라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한 석면은 일정량 계속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의 진동 등의 영향으로 어느 순간 많은 양의 석면 가루가 공기중으로 비산되고, 그 순간 거기에 있던 이용객들은 석면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지하공간이라 석면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계속 맴돌면서 피해를 확산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하루 600만명, 연간 22억 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석면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지난해 서울시는 1~4호선 117개 전 역사를 대상으로 석면 함유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호선 시청ㆍ을지로입구ㆍ상왕십리ㆍ한양대ㆍ삼성ㆍ선릉ㆍ교대ㆍ서초ㆍ방배ㆍ낙성대ㆍ신림ㆍ봉천ㆍ문래ㆍ영등포구청, 3호선 충무로역, 4호선 성신여대ㆍ숙대입구역 등 17개 역의 승강장이나 선로위 천장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

 

또한 117개 역사 가운데 102곳은 환기설비나 배관, 건축자재 등에 석면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신림역·영등포구청·선릉·상왕십리·을지로 입구·한양대역 등 6곳에서는 백석면보다 발암위험이 수십배 높은 갈석면이나 청석면도 나왔다.

 

또 이용 승객이 많은 2호선 방배역 승강장 및 선로 천장에서는 백석면보다 독성이 100배 이상 강한 트레몰라이트가 검출됐다. 2호선 신설동역도 대표적인 석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24일 기자가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보수 내지는 제거가 시급한 방배역과 신설동역을 둘러봤다.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승강장 및 선로위에 뿜칠된 석면(트레몰라이트)은 군데 군데 떨어져 나간 흔적이 많았고, 열차 통과시 강한 바람에 의해 비산우려가 높았다.

 

서울 메트로측은 최근 지하철역사내 석면 대책을 내놓으면서 방배역의 경우 내년 냉방공사 일정에 맞춰 역폐쇄와 함께 석면제거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으며, 신설동역의 경우 심야 시간대를 이용해 석면을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 국내의 석면 처리 실태는…

 

 

아직도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는 슬레이트 등의 석면자재들이 건축폐기물과 함께 불법 처리가 자행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석면해체 면허제도가 없다. 석면제거 작업 면허를 받은 업체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전문 교육기관조차 없다. 국내에 석면관련 단체는 모두 3곳. 대학교수나 업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협회들은 저마다 공인 교육기관임을 내세워 석면 자격증 관련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면분석·해체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아 고도의 전문 능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석면 분석과정만 1년여 과정을 거친 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지 4~5일 교육만으로 전문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제대로 된 분석조차 의심된다.

 

단정적으로 말해 국내에는 석면을 제대로 분석·해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업체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석면 해체와 관련해 업체 경쟁은 치열한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석면 해체 등 처리업은 일명 ‘돈되는 사업’으로 통한다. 누구나 석면계획서만 작성해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해체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석면 분석·해체 기술없이 해체업에 뛰어 들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석면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적정처리를 통한 국민의 건강보호 차원에서 선진국처럼 석면 해체·제거 면허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석면 처리는 환경부 소관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관리법상 석면은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고형화 내지는 고온용융처리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내는 고온용융시설은 단 한곳도 없으며, 다만 고형화 시설이 2곳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처리비용도 부르는 게 값. 톤당 최고 250만원까지 치솟은 적이 있을 정도다.

 

또한 이렇게 처리업체가 적다보니 제거를 한다고 해도 적정처리가 이뤄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에는 불법처리 내지는 일반 사업장폐기물과 섞여 그대로 매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태조사 위주 예산투입 현실성 결여 '한목소리'

 

◆ 정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정부는 지금까지 인체 안전기준이 없었던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위험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최근 환경부, 노동부, 교육부, 국방부, 건교부 등 5개 부처 합동으로 ‘석면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대책에는 ▲ 2009년부터 모든 석면 및 석면함유제품의 수입·제조·사용 금지 ▲석면조사결과서 제출 의무화 ▲ 석면조사·분석 자격제 도입 ▲ 석면해체·제거 전문업 등록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오는 2011년까지 석면관리 표준 모델을 개발하고, 실태조사를 비롯해 전문인력·기관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603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예산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쓰여지지 않고, 대부분 실태조사와 인프라구축에 사용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 마땅한 전문가조차 없는 현실에서 막대한 예산이 일부 대학교수에 의해 나눠먹기식으로 사용될 수 있고, 이에 따른 부실한 실태조사와 외국 자료 베끼기 등으로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실효성 없는 대책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석면에 대한 피해와 위험이 커지는 현실에서 실내조사에만 그치는 정부의 이번 대책. 석면을 제거한다고 해도 적정처리가 태부족인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처리시설을 우선 확충하는 안이 빠져있다. 또 석면피해가 급증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대책도 빠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행 석면관련 업무가 부처별로 분산돼 있고, 이를 노동부가 주관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근로자의 안전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일반 국민들의 위험은 나몰라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환경부가 모든 업무를 주관해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은 말한다. 석면 제거 및 처리는 폐기물관리법으로, 석면 먼지에 의한 비산 등의 관리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관리하게 함으로써 석면의 노출로 인한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석면은 우리 주위 도처에 널려 있다. 지하철에서 인테리어 공사현장, 재개발·재건축이 이뤄지는 현장까지, 이제 석면으로 인한 피해 공포는 점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석면 사용연도와 사용량 등을 감안해 일본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현재 1년에 약 500명 이상이 악성중피종 등 석면관련 질병이 발병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피해는 직접 노출자인 현장 근로자뿐만 아니라 간접 노출에 의한 어린이, 주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최근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 환자로 사망한 환자중에 주부가 포함돼 있는 사실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사망률 100%로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는 석면 질환.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해체에서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친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