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48>빈병의 경제학
[안동유의 세상만사]<48>빈병의 경제학
  • 국토일보
  • 승인 2015.11.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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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빈병의 경제학


군것질거리가 없던 어릴 적에 학교 앞이나 동네 어귀에 번데기 장수나 엿장수가 오면 인기였다. 돈이 없던 시절 고물 장수에게 바꿀 수 있는 고물이 좋은 수집 대상이었다.

길거리에 쇳조각도 주워 모아서 팔던 시절이고 종이도 모아서 갖다주면 돈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 어렵사리 모은 술병이나 음료수 병은 좋은 재활용 거리라 병을 갖고 가면 돈으로 바꿔 주어서 애주가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그런 용돈 벌이도 쏠쏠하게 했다.

술 회사나 음료수 회사로선 비싼 유리병을 만드는 것보다 다시 수집해서 씻어 재활용하는 것이 더 나았고 나라로서도 득이 되었던 것이다. 자원이 없고 가난한 나라의 고육지책으로 결과적으로 자원 재활용의 효율이 극대화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우리나라가 살만해지면서 찾아와서 병을 사가던 고물장수나 엿장수들이 없어지고 귀찮게 무거운 병들을 상점까지 들고 바꾸러 다니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그깟 돈 몇 푼‘이 되어 버린거다.

요즈음 빈병 보증금을 현실화하는 방안이 다시 거론된다. 자원 재활용 차원에서 병값을 비싸게 보상해 줘야 무거운 병들을 들고 상점으로 바꾸러 올 것이란 계산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졸속 행정이란 감이 적지 않다.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에 엿장수나 고물상에게 넘겨주면 병당 10원 정도 쳐 줬던 것 같다. 아마 그러면 그들은 병당 20원 정도 받아서 이문을 남겼던 듯하다.

병을 수집하고 갖다 주는 수고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땀흘린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어느 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가 실렸다.

소비자에게 빈병에 대한 값을 20원(정도로 기억한다) 돌려준다는 것이다.

웬일로 기업에서 이렇게 선심을 쓰나하고 보았더니 보증금이란 것을 20원 받아서 빈병을 가져오면 그 20원을 돌려 준다는 것이다. 지금껏 그런 것 없이 200원에 잘 사먹고 병을 고물상에게 주면 애들 과자값이라도 받고 아니면 그냥 지나갔던 소비자들은 졸지에 20원을 더 내게 생겼다.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해 빈병 반환을 독려하는 유인책인 줄은 알지만 멀쩡히 값을 10% 인상한 것이다. 빈병을 갖다 주는 수고를 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으면 되지만 하지 않던 수고에 대한 보상은 없다.

엿장수에게 빈병을 넘기면 10 원을 받았으니 수고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5% 인상된 값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 소비자도 귀찮아 하고 상점 주인도 귀찮아해서 흐지부지 되고 말다가 몇 차례에 걸쳐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값을 올리는 한 구실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점 주인이야 득도 없이 갑인 기업에 등을 떠밀려 병을 수집해서 넘기는 귀찮은 일을 해야 하니 꺼려하고 그 과정에서 깨진 병은 자기가 손실을 부담해야하니 빈병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보증금을 깎아서 주는 곳도 많아졌다. 소비자도 곧 물가가 올라 별 돈이 안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보증금이란 돈이 20원에서 30원, 40원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기업들은 큰 선심이나 쓰듯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값도 올리고 재활용 비용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이익을 봤다.

빈병 재활용 문제의 본질은 빈병 수집이라는 귀찮은 일을 하는 직업군이 없어져서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돈만 올리면 또 흐지부지되고 다시 보증금을 올리는 악순환을 거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득을 보겠지만….

보증금을 현실화한다는 명분으로 또 이런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며 소비자를 우롱하려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