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38>‘한자병’ 기사 두 개
[안동유의 세상만사]<38>‘한자병’ 기사 두 개
  • 국토일보
  • 승인 2015.06.0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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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한자병’ 기사 두 개

다음은 어떤 신문의 기사다.

[지난 2월 10일 ‘우리말 겨루기’에서는 흔히 쓰는 ‘포복절도’, ‘화룡점정’ 등 사자성어 문제는 냈지만 그 한자 쓰기는 시키지 않았다. ‘포복절도’의 뜻은 알면서도 그 한자를 쓰지 못하는 거야말로 ‘포복절도(抱腹絶倒) 감’이 아닐까.

‘우리말 겨루기’, ‘골든 벨을 울려라’ 등 TV 프로에서 한자 쓰기를 시키지 않는 건 어처구니없는 처사다. 그건 우리말의 70%인 한자어를 말살하는 거다. 그래서 낫 놓고 ㄱ자를 못쓰는 게 아니라 고무래를 놓고도 丁자를 못쓰는 문맹과 자맹(字盲) 천지를 초래하는 거다. 우리 한자는 중국 ‘漢字’가 아니라 대한민국 ‘韓字’다.]

언청이 말에 다름 아닌 한자(말)을 꼭 써야한다는 이런 한자병 환자들이 많아서 한국 국민들이 무지몽매에서 못 깨어나고 있다.

말할 때 소리를 듣고 이해하는데(그 소리를 보여 주는) 글을 보고는 이해 못한다니…. 이 사람은 말할 때마다 한자를 써서 보여 줘야 이해하나 보다.

소리도 하나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글을 무슨 신성문자나 되는 듯 떠받드는 이런 한자병 환자들은 중국서 켄터키 치킨 가게에 건더지라고 써있는 걸 보고 뭐라 할까?

내가 다녀온 필리핀을 비율빈이라 해야하나?

또 하나의 기사를 보자.(글쓴이는 수학 교수다.)

[우리말의 상당수가 한자를 포함하고 있는 이상 어휘를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확장성을 가진 한자를 습득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바람풍(風)을 배운 후 이미 알고 있던 태풍·풍경·풍력발전소 등의 단어가 풍(風)을 중심으로 접합되고 더 많은 단어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면서 느꼈던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자를 동반한 설명이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수학의 양수(陽數)와 음수(陰數)에 대응되는 중국과 일본의 용어는 정수(正數)와 부수(負數)다.
양수가 이익이라면 음수는 부채(負債)이므로 부수(負數)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식 발음에서는 정수(正數·positive number)와 정수(整數·integer)가 동음이의어가 되어 한자 종주국에 없는 독창적인 용어를 만들어낸 것으로, 양수와 음수는 음양이 대비를 이루면서 0을 기준으로 상반된 수라는 성질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한자병 환자들의 잘못된 주장 중 하나가 “우리말의 상당수가 한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교착어이면서 동사, 형용사의 말꼬리가 활용을 한다. 그래서 고립어인 한자와 단순 수자로 비교하면 안 된다.

한자는 한 낱말이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우리말은 여러가지로 변화하면서 낱말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기본형 한 낱말만 사전에 올라 있는 것이다.

그리고 쓰지도 않는 죽은 한자말이 잔뜩 사전에 올라와 있는 건 달리 말할 필요가 없다.

국어학자란 어떤 이가 백분토론서 한 말에 “초등학교 책에 이순신 장군이 전선을 앞세워 싸웠다”란 말이 나오는데 사전에 많은 전선의 뜻 중에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있었다.

사전에서 전선의 뜻을 보자.
1. ‘군사’ 전쟁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나 그런 지역을 가상적으로 연결한 선.
2. 전류가 흐르도록 하는 도체(導體)로서 쓰는 선.
3. 직접 뛰어든 일정한 활동 분야.
4. 전투에 쓰는 배.

이 정도가 자주 쓰는 말이고-사실 전투에 쓰는 배는 이제 전함이란 말로 더 많이 쓰인다- 나머지 7 개는 억지로 만든 거라 알기도 어렵고 쓰지도 않는 말이다.

전력으로 돌리는 선풍기란 설명은 코메디의 고갱이다.

그래 설마 이순신 장군이 전깃줄을 앞세우고 싸웠을까? 참 웃긴다.

저 수학 교수는 수학 낱말로 뭔가 이야기해 보려 하지만 참 넌센스다.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몇어찌란 수필에서도 보듯 기하학은 한자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다. geometry를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나타낸 것이다.

종주국이란 말을 버젓이 써가며 한자를 찬양하는 저런 태도는 정말 문화 사대주의의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