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慈悲)는 불교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德目이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자무량심(慈無量心), 비무량심(碑無量心), 희무량심(喜無量心) 및 사무량심(捨無量心)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자무량심(慈無量心)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자하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기쁨, 즉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이 있으나 주는 기쁨이 더 크다고 한다. 특히, 기쁨과 이익 그리고 즐거움을 무한히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와 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일체 중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무량한 마음이라고도 한다.
둘째, 비무량심(碑無量心)은 남의 불행과 고통을 없애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가 어떤 괴로움과 대가를 치를지라도 상대를 고통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 비무량심의 성취를 위해서는 자기 헌신 내지는 희생이 뒤따를수도 있다.
셋째, 희무량심(喜無量心)은 상대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 주는 마음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적어진다는 마음이다. 대개 다른 사람의 슬픔에 동정을 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일에는 인색한 편이다.
넷째, 사무량심(捨無量心)은 일체의 구애받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남보다 잘나고 더 뛰어나다는 생각까지도 버린 편안한 마음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대해 부처님께서도 “아난아, 이 사무량심은 네가 마땅히 나이어린 비구들을 위하여 설하고 가르칠지니라. 만약 모든 연소한 비구들을 위해 가르치면 편안함을 얻고, 힘을 얻으며 낙을 얻어서 맑고 깨끗한 행실을 하리라” 고 설하셨다.
인간의 삶을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살아간다면 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요즈음 매스컴에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용산참사의 경우는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내 것이라는 욕심속에 일어난 참사이다.
자무량심(慈無量心)과 희무량심(喜無量心)의 정신으로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주는 기쁨을 알았더라면, 또 적게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남는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출범에 맞서는 북한정권의 오만과 북한국민의 생활상을 보면서 비무량심(碑無量心)과 사무량심(捨無量心)의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들을 보면서 희무량심(喜無量心)과 사무량심(捨無量心)의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 가 없다.
오랜 겨울 가믐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비(雨)는 근본이 물(水)이다. 물의 다른 형상일 뿐이다. 물은 세상의 낮은 곳을 찾는다. 산골샘터에서 발원한 작은 물방울은 바다로 가기까지 모든 난관을 인내로 극복한다. 막히면 돌아가고 갖히면 기다린다. 그러나 끝내는 바다에 도달한다.
아마 물은 세상만물 중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삶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그 수단과 방법은 물과 같은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두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