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36>자본주의 행복론
[안동유의 세상만사]<36>자본주의 행복론
  • 국토일보
  • 승인 2015.05.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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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행복론

흔히 우리는 자본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산업혁명 이후 부르좌 계급의 출현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그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든 어느 시대든 둘다 그 맹아가 자라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싶다.

자본주의가 여러가지로 정의될 수 있겠지만 쉽게, 모든 물적, 인적, 요소들을 결합해 최대한 생산성(효율)과 생산력(생산량)을 끌어 올려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제도라고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고대에도 분명 물적, 인적 요소를 투입하여 최대한 생산력을 끌어 올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고 그런 흔적들도 보인다. 고대 신전에 성수 자동 판매기가 있어 금화를 넣으면 물이 나오는 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개방 이후 자본주의화되어 어디에도 사회주의의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렵게 돼 있다. 정치체제를 빼곤.

오죽하면 집에선 자본주의, 나가선 사회주의라 하겠는가? 아무튼 그 자본주의의 극단에 우리는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

고갱의 그림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란 그림이 근본적인 질문을 한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가?’란 질문도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무척이나 바쁘고 복잡하고 발전된 세상에 살지만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후진국이라고 보는 나라들이 행복지수가 더 높고 자본주의적으로 극히 발전했다고 보는 서구 선진국이 행복지수가 낮은 현상은 그 측정방법의 객관성 여부를 고려하여도 상당 부분 맞다고 보인다.

 

더 큰 집에 더 많은 교육에 더 많은 월급을 받아도 늘 바쁘고 힘들고 외롭다. 우리나라 역시 행복지수도 낮고 우울증 환자도 늘고 자살률도 높다.

물질이, money가 king인 자본주의의 한계다. 어느새 집을, 투자를 넘어선 투기 대상으로 삼고 안온하고 단란한 가족의 보금자리에서 떼내어 버린지 오래다.

가끔 이런 말을 후배들에게 해 주곤 한다. “집은 하우스가 아니라 홈이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만하면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이사를 해대면 돈은 벌지만 아이는 추억이 없어진다.

사무실 근처에 지짐집이 생겼다. 보통은 초벌구이를 해 뒀다 덮혀서 재빨리 내오지만 이 곳은 주문하면 아주머니가 바로 여러가지 지짐을 만들어 온다.

자본주의적 방식엔 어긋나지만 그 맛이란 재벌구이 지짐과 비교가 안 된다. 농으로 소문내지 말고 우리끼리 맛있게 먹자고 직원들끼리 얘기했다.

손님들이 몰려들면 아무래도 소홀하고 재벌구이로 갈테니 그런 건데 아주머니는 소문 내 달란다. 그래서 결국 거래를 했다. 자주 오기로 하고 소문은 안 내는 걸로….

짜장면이란 수필에서 좁고 겁많게 사는 ‘나’는 소박한 중국집에서 양파에 짜장을 찍어 친구에게 호기롭게 “한잔 들게” 외칠 수 있는 이런 중국집이 많이 살아 남았으면 한다.

그렇다.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자본주의는 재벌에게 맡기고 우리는 재벌구이 지짐이 아닌 초벌구이 지짐의 소박한 행복을 맛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