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이팝나무
[茶 한잔의 여유] 이팝나무
  • 국토일보
  • 승인 2015.05.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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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이팝나무

 
이팝나무는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대전 근처까지의 남쪽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인데 기후가 점점 온난화 되어선지 서울에도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달고 만발했다. 한동안 조팝나무가 온통 하얗게 피어 있더니 요즈음 임무교대를 한 것처럼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다.

두 나무 모두 하얀 쌀밥을 연상케 하는 꽃을 피우지만 조팝나무는 싸리나무 같은 나지막한 나무에 꽃이 가득 매달려 있고, 이팝나무는 키가 20여m 까지 자란다.

‘입하’ 때 꽃이 피어나서 이팝나무로 불린다고도 하고, 옛날 가난했던 시절, 이맘때쯤이 되면 지난해의 쌀은 떨어지고 새로 보리가 날 때까지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는 초근목피의 보릿고개 즈음에 하얀 꽃이 피어나면 마치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 불렀다고도 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다 해서 눈꽃나무(snow flowering) 라고 부른단다.

이팝나무에 관한 애달픈 전설도 전해진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던 착한 며느리가 5월 어느 날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시어머니가 내주는 쌀로 제삿밥을 짓게 되었다. 친정이 워낙 가난하였던 지라 시집 올 때까지 잡곡밥만 짓고 한 번도 쌀밥을 지어 본 적이 없는 며느리는 밥물을 얼마로 잡아야 할지 잘 몰라 혹시나 제삿밥을 잘못 지어 낭패를 당할까봐 몹시 걱정이 되었다.

▲ 이팝나무 꽃
그래서 뜸이 제대로 들었나 보려고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문틈으로 이 광경을 보고는 ‘제사에 쓸 쌀밥을 몰래 퍼먹고 있다’면서 온갖 구박을 하였다. 구박을 견디다 못한 며느리가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고 말았는데,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흰 쌀밥 같은 꽃이 수북하게 피는 나무가 자랐고 사람들은 쌀밥에 한이 맺혀 죽은 며느리가 환생한 것이라고 해서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이팝나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하얀 쌀밥이 생각나는데 이 나무는 고전인 흥부전에도 등장을 한다. 우리의 고전 소설은 근본적으로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흥부의 파트너인 놀부는 참으로 못 된 위인이었던 것 같다. 보통사람은 오장 육부인데, 놀부는 오장 칠부로 심술 부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한다.

흥부전에 보면 놀부의 서른여덟 가지 심술행태가 나열되는데 그 행동거지가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애 밴 여자 배 차기, 다 큰 처녀 겁탈하기, 우는 애 때리기, 호박에 말뚝 박기, 초상난 데 춤추고, 불 난 집에 부채질 하고, 남의 제사에 닭 울리고, 비 오는 날 장독 열고, 똥 누는 애 주저앉히기.” 등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고 그려지고 있는데 반해 그 파트너인 흥부는 착하기가 그지없다.

있는 것은 없고 없는 것은 많은데도, 스물 셋씩이나 자식을 퍼질러 놓고 입을 것이 없으니 이불 대신 멍석에 스물 세 개의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애들을 몰아넣고 애가 늘면 구멍만 하나씩 더 뚫는 아이디어를 개발했으나, 문제는 식량이었다.

형수 밥 풀 때, 밥 동냥을 하다가 주걱으로 얻어맞고, 쌀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다시 해보려고 형수 뒤에 바짝 붙어서 ‘형수님, 저 흥분데요.’ 했다가 ‘흥분’된다는 말로 성추행으로 몰려 다시 얻어맞고, 다시 찾아가 ‘한 번만 더 사정하러 왔다’ 했다가 ‘사정(射精)’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또 엄청 맞았다는 캐릭터의 인물이다.

할 수없이 굶주린 자식들을 생각하여 매 품을 팔러 가기로 했으나 실은 매를 맞으러 가지 못했다. 방에서 부인에게 매품 팔러 간다는 얘길 하는 것을 꾀쇠아범 이라는 자가 부엌에서 엿듣고 구전을 먹고 다른 사람한테 연결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관가의 문지기에게 인정(人情- 약간의 뇌물)을 베풀었어야 본인이 맞을 수 있었던 건데….

그런 와중에 흥부는 부러진 제비다리를 묶어 주는 찬스를 잡으면서 일시에 형편이 펴졌다. 흥부전에 나오는 그 톱질의 첫 번째 대박에서 “하얀 쌀밥이 이팝나무만큼이나 쏟아 졌다. 스물세 놈 새끼들이 달려들어 퍼먹고 배가 남산만큼이나 커졌다”라고 쓰고 있다.

오늘 활짝 핀 이팝나무의 하얀 꽃을 바라보니 뭘 먹지 않았는데도 이상스레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