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뇌물
[茶 한잔의 여유]뇌물
  • 국토일보
  • 승인 2015.04.0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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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뇌 물

 
뇌물이란 ‘직권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하며 주는 부정한 금품’ 이라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처음 집권해 첫 마디가 ‘오천년 역사가 다 썩었다’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그나마 중국이나 몽골보단 낫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연관계에 있는 남자 변호사로부터 사건청탁의 대가로 벤츠 승용차를 받았고 법인카드까지 받아 사용했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일명 ‘벤츠 여검사’가 대법원으로 부터 ‘그녀가 받은 것은 뇌물이 아니고 사랑의 정표’라는 이유로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유인 즉은 벤츠를 받은 시점은 사건을 청탁하기 2년 쯤 전의 일이고, 사건의 청탁이 있을 무렵엔 그가 제공한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거 같다.

물론 뇌물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화 돼 있는 ‘특별한 편의를 봐 달라고 부탁하며 주는 금품’에 해당돼야 한다. 누가 봐도 뇌물이 분명하더라도 그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뇌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맹점을 바로 잡기 위해 요즘 한참 논란이 일고 있는 ‘김영란 법’은 대가성이 없어도 일정액을 받으면 뇌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뇌물을 흔히 떡값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은 우리가 아는 뇌물의 의미가 아니고, 차가 없던 시절 먼 길을 걸어서 갈 사람이 장시간 떡을 갖고 가면 굳고 상하니까 가는 길에 새 떡을 사 먹으라고 떡 대신 주는 돈이다. 즉, 정을 나누는 것인데 오늘날 뇌물이라는 의미로 변질된 것이다.

통칭 떡값, 촌지(寸志), 미의(微意), 설대(舌代), 촉대(燭代), 거마비(車馬費), 봉투 등으로 불리는 뇌물은 담는 그릇도 편지봉투, 서류봉투, 사과상자, 굴비상자, 골프백, 화물차떼기 등 가지각색이다.

돈을 담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쓰이는 봉투는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내려온 선비정신에서 기인된다. 옛 선비는 돈을 만지지 않는 것(手不執錢)을 미덕으로 삼다 보니 돈이 직접 손에 닿지 않도록 기생에게 화대를 줄 때도 젓가락으로 집어 주거나 접시에 담아 주었고, 남에게 돈을 전달할 때도 봉투에 담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돈을 준다’고 하지 않고 ‘봉투를 준다’고 한 것이다.

사용되는 수단으로 지금은 오만 원 권을 편리하게 쓰고 있지만, 오만 원 권이 나오기 전에는 만 원권을 사용했다. 수표는 추적이 되기 때문에 현금을 이용하는데 만 원짜리는 일반 편지봉투에 백만 원이 들어가고, 신권은 2백만 원까지 들어간다.

보통 200만 원이 초과될 땐 책갈피에 끼워(길이 방향으로 3줄 300백만 원, 두 겹으로 600만 원까지 가능) 테이핑한 뒤 서류봉투에 담아 밀봉한다. 600만 원이 초과 될 땐 1,000만 원 까지는(5줄 두 겹) 서류용 청 파일에 차곡차곡 넣어 테이프로 고정한 뒤 서류 봉투에 담을 수 있다. 007가방엔 보통 5,000만원 까지 들어가는데 그 이상은 사과박스 등을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10만 원 권 수표는 만 원권보다 규격이 작다.

흔히 뇌물사건에서 준 사람은 최소한의 처벌을(받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증거 협조 등) 하고, 받은 사람은 중벌로 다스리게 되는데 별도의 증거가 없이 준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하기에 진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어쩔 수 없나보다. 물론 함정을 파고 남을 빠뜨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놓는다던지, 수표 등의 일련번호를 사전에 적어 놓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뇌물사건은 성격상 증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수사할 때는 언제나 준 사람의 말에 의해 사건을 캐 나가게 돼 있다. 당연히 받은 사람은 받았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상황이 달라져 서로 다투며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말이 서로 틀릴 땐 전달할 때의 장소 상황과(그날 비가 왔는지, 옷은 무슨 색 옷을 입고 있었는지, 누구누구가 있었는지 등) 얼마짜리를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담았는지 물어보면 상황이 맞지 않거나 돈 담은 그릇의 용량이 다르면 거짓은 금방 탄로 난다.

전통적인 뇌물로는 흥부가 매품 팔러 갈 때 문지기에게 주어야 했던 인정(人情 - 인정을 바치지 않아 흥부는 매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 관가의 결재 서류를 맨 입으로 그냥 올리면 복(卜)이라 써서 반환하는데 이때는 복대(卜帶), 사또 밥상에 오를 찬값이라는 치계미(雉鷄米), 포졸들의 집신 값이라는 초혜료(草鞋料), 휴가에 보태 쓰라고 주는 말미 돈, 형장 칠 때 종이 몽둥이로 쳐주는 지장가(紙杖價), 부정을 저지르지 말고 청렴하라고 바치는 양렴미(養廉米), 죽어 저승 갈 때 저승의 열 두 대문마다 지불해야 된다는 지전(紙錢) 등 하나같이 주는 사람을 위한 대가성이 있어 보이지만 죽은 사람(내가 아닌)이 저승에서 쓰라고 주는 지전(紙錢)까지 뇌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물건을 받고 잠을 못 이루면 뇌물, 잘 자면 선물이고, 뇌를 굴리면서 주는 것은 뇌물, 선뜻 주는 것은 선물이란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감사한 마음의 선물이 오가는, 그런 훈훈한 나날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