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공포
J의 공포
  • 국토일보
  • 승인 2009.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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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기 칼럼] 동아대학교 교수

  “25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퇴직합니다. 그 동안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맡고 있던 일을 그만 두게 됐습니다. 그 동안 협조와 도움에 감사드리며, 조만간 좋은 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설 연휴에 국내 대형건설업체의 임원으로부터 날아온 2통의 문자메시지이다. 내용으로 봐서 자의가 아닌 회사의 사정에 의해 직장을 그만 둠을 짐작할 수 있다. 유난히 춥게 느껴진 설 명절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각 분야에서 실직.해고.감원의 칼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9년 말까지 전 세계 실업자 수가 최대 5천만명, 평균 3천만명 더 늘어나 사상 처음으로 2억1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1월 26일 하루 동안 공식 발표된 미국.유럽 등지 주요 기업들의 인력 감축 규모는 무려 7만명에 달한다. ‘피의 월요일’로 각종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몰아치고 있는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발표한 국내의 각종 경제지표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도 4분기 경제성장률이 -5.6%에 달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시대를 1년 만에 접고 1만8천 달러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오일쇼크 영향을 받았던 1980년(-2.1%)과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6.9%)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불과 한 달여 전에 예측할 당시만 해도 -1.6%였는데 실물경제 위축은 훨씬 가혹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 같은 경제 악화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9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측하는 해외 주요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런 여파로 다음 달에 국내 실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 설 것이라고 국내 민간 연구소들은 예측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8년 만에 다시 ‘실업자 100만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올해 신규 취업자 수도 2003년 이후 6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작년에 비해 3만명(삼성경제연구소)에서 10만명(한국경제연구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악의 ‘고용 대란’ 사태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경제위기 때마다 항상 구조조정의 1순위가 되는 것이 건설업체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퇴출 1개사를 포함한 총 12개 건설사를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1차 발표하였다. 이들 업체에 대해서는 1월 말까지 워크아웃 개시나 법정관리 신청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시공능력 101~300위의 94개 건설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2월초에 단행될 전망이다.


건설업계는 지난해부터 주택경기가 급랭하면서 생존을 위한 자구노력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금융권의 구조조정 결과가 건설업체들에게 미칠 회오리는 그 강도가 훨씬 강해질 전망이다.


기업들은 구조조정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대책을 선택한다. 기업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력 감축이나 임금 삭감이다.


특히 건설업은 프로젝트 사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건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인력 감축이다. 은행권의 건설사에 대한 2차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 대규모 건설인력에 대한 감원 태풍이 몰아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한 이상의 ‘J(Jobless, 실직)의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규모나 영향력에서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력 감축은 소비자들의 지출을 줄이고 신용카드 연체율을 증가시켜 소비자들의 신용을 더욱 압박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수요침체와 더해지면서 경기침체를 더 장기화시킬 뿐만 아니라 감원 규모가 커질수록 경기침체는 더 깊고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력 감축의 또 다른 문제점은 생각보다 단기적인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인력을 감축하는 데도 큰 비용이 소요되지만 경기가 회복될 때 다시 고용을 늘리려면 적절한 인력을 찾고 관련 업무와 기업문화 교육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감원 때부터 잠재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감원대신 직원들의 충성도를 제고하는 것이 경기 침체기에 적절한 대비책이며, 신규고용을 줄이고 고통분담 차원에서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이 감원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요즘 경제 어렵지만 직원 한 명도 내보내지 않겠다.” 국내 최대 CM사 회장이 최근 모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내용 중 일부이다. 이 회사는 IMF 외환위기 때에도 직원 중 해고자는 없었다. 방법은 3개월씩 최저 생계비만 받고 쉬는 순환근무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건설업계에는 진한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건설업계는 지금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맞을지 모른다.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감원이 최선책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고통분담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가 건설업체의 또 다른 선진기업문화 정착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hglee@d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