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국화 앞에서
[茶 한잔의 여유] 국화 앞에서
  • 국토일보
  • 승인 2014.10.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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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국화 앞에서

국화(菊花)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 불리는 국화는 특히 군자와 은자를 상징하며, 무서리 내리는 추운가을에 핀다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간의 인고와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전통적으로 꽃의 화려함 보다는 꽃의 내면을 보곤 했는데, 일찍 심어 늦게 피니 군자의 덕이요, 서리를 이겨 피니 선비의 지이며, 물 없이 피니 한사(寒士)의 기라 하여 국화의 삼륜(三倫)이라 하였다.

국화는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국화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들국화(구절초, 개미취, 쑥부쟁이 등 산야에 피는 야생국화)가 있는데, 온도나 채광을 통해 꽃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재배용 국화는 그 꽃의 크기에 따라 大菊, 中菊, 小菊으로 나뉘며, 야생국화는 꽃의 크기가 작고 자연 상태에서 10월에서 11월에 핀다.

관상용 대국의 경우 우수품은 꽃잎의 폭이 넓고 힘이 있으며, 꽃잎의 짜임새가 규칙적으로 위로 둥글게 솟아오르며, 위쪽의 꽃잎이 상단 중심으로 향하게 되며, 중앙의 화심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꽃의 색깔은 노란색, 흰색, 빨간색, 보라색 등 다양하나 가장 많은 것은 黃菊이라고 불리는 노란국화다. 노란 국화는 꽃의 색깔이 黃色이라서 그렇겠지만, 노란색을 신성시 하는 중국에서는 황화(黃花) 또는 황예(黃蘂)라고도 하는데, 군주를 황제(黃帝)라 했듯이 국화를 ‘꽃의 왕자’라 하여 ‘黃花’라고 한 것이다.

가을이 깊어질 걸 생각해 해마다 화분 몇 개쯤을 집 안에 준비해 둔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올핸 시간에 쫒긴 다는 핑계로 국화를 가까이 하지 못하다 보니 좋은 모양이 나오질 못했다. 좋은 모양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화 몇 송이를 가까이에 두고 바라보며, 봄부터의 슬픈 소쩍새의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의 천둥도, 차가운 가을밤의 무서리마저도, 온갖 풍상을 겪고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원숙한 내 누님 같이 생긴 꽃 이라 쓴 '국화 옆에서' 라는 시를 생각해 보곤 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꽃이 각자 다르겠지만 국화를 좋아한 이는 너무나도 많은 듯싶다.

연꽃을 가장 좋아했다는 염계(주렴계)를 생각하며 ‘濂溪愛蓮(염계애련)’이란 詩를 쓴 퇴계 이황은 연꽃을 사랑함에 ‘모란은 온 세상이 기리고, 국화는 어진이의 심금을 울려 주지만, 연꽃은 염계 이후 천년이나 세월이 흘렀건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차마 국화를 내세우고 있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선 ‘아침에는 목란(木蘭)의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가을국화를 씹는다’고 했으며, 도연명은 ‘삼경(三逕)은 이미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구나’라고 했으며,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그의 장편시 국화탄(菊花嘆)에서 나는 국화를 사랑한다며 ‘국화는 비록 내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내 평생 술잔을 들어본 일 없으나/ 내 평생 입을 벌려 웃어본 일 없으나/ 오늘은 너를 위해 웃어보리라’고 했다.

혹자는 ‘불어오는 바람에 국화향기를 맡으려다 세속에 물든 나쁜 것까지 묻어올까 저어하여 차라리 꽃잎을 술에 띄워 마시리라’했으며, 이정보는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라 했고, 규재집에 보면 남병철은 국화를 한 가족처럼 식구에 비유하고 있으니 ‘가을이 되자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불었는데/ 희고 누른 산국화 두세 가지가 그것일세’라고 했다.

작가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술깨나 했었을 법한 어느 선배는 한적(閑適)이란 제목의 시에서 ‘창 밖에 핀 국화 어제였나 그제였나/ 나보고 반겨 피고 구월이라 미쳐 핀다/ 아이야 잔 가득 채워라 띄워두고 보리라’했으며, 조선시대 송순도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꽃 피운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양 마라 임의 뜻을 알겠나’라 했고, 이규보는 ‘춘삼월 봄바람에 곱게 핀 온갖 꽃이/ 한 떨기 가을국화만 못 하구나/ 향기롭고 고우면서 추위를 견뎌 사랑스러운데/ 더구나 술잔 속까지 말없이 들어오네’라 했으며, 강희맹은 ‘사시에 철이 바뀌니 봄, 여름 꽃이 시들어지네/ 뭇 꽃들 지고 난 다음 꽃을 피워서/ 맑은 향기 뼛속까지 스미는구나.’라 했고, 남부지방에서 불리는 각설이 타령에도 ‘굿자(九字)나 한 장 들고 봐/ 구월이라 국화꽃/ 화중군자(花中君子) 일러 있다’ 했으며 오죽하면 ‘매화타령’에서도 ‘안방 건넌방 가로닫이/ 국화 새김에 완자문이란다’하여 국화를 등장시킨다.

근대의 서정주는 ‘황국은 그 잠 다 깬 황금의 내부와 같은 빛깔이 어리지도 야하지도 화려하잘 것도 없어서 그 빛깔이 우선 낯익은 어여쁜 아주머니 같이 남 같지 않은 게 좋고 그 냄새에서는 또한 우리에게 영원에의 향수(Home sick)를 느끼게 한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려한 무슨 꽃 냄새보다 이 시골뜨기 같은 쑥이나 국화냄새라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과 같아서 인력으로 막을 수가 없나보다. 어렵사니 찾아온 이 가을밤이 너무 빨리 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국화 몇 송이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본다. 깊어만 가는 이 가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