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24>
[안동유의 세상만사] <24>
  • 국토일보
  • 승인 2014.10.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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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로마는 세계를 네번 정복했다

 흔히들 로마는 세계를 세번 정복했다고 한다. 이 말은 독일의 유명한 법학자 예링이 한 말로 그의 저서 ‘로마법의 정신’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고 한다.

“로마는 세계를 향하여 세번 법칙을 명하였고, 여러 민족들을 세번 통일로 이끌었다. 그 첫째는 로마 민족이 아직 그 세력의 전성기에 있을 무렵에 달성한 국가의 통일이고, 그 둘째는 로마 민족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후에 실현된 교회의 통일이며, 그 셋째는 로마법의 계수를 통하여 중세에 이루어진 법의 통일이다. 첫 번째 통일은 무기의 힘으로 외부적 강제를 통하여 이루어졌지만, 나머지 두 번의 통일은 정신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의 세계사적 의미와 사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세계성의 사유를 통한 민족성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로마는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당시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라 일컬어졌다. 힘으로 세계를 정복한 로마는 로마 카톨릭으로 대변되는 기독교의 종주국이 됨으로써 또한번 세계인의 정신을 지배했다.

바티칸 시국과 로마 교황청이 그 유산이다.

또한 로마를 무너뜨리고 서구 세계를 지배한 게르만 제국에 로마법이 계승돼 발전됨으로써 전세계에 로마의 정신이 퍼져 나갔다.

일본이 독일의 법을 들여 왔고 식민지 교육을 통해 우리 역시 그 법을 도입하게 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들어 예링은 로마의 영향력을 이야기했고 로마는 세계를 세번 정복했다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로마는 언어로 또한번 세계를 정복했다고 볼 수 있다.

보라. 오늘날 로마자로 일컬어지는 알파벳이나 파생 글자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쓰고 있는지를. 라틴어 계통의 언어를 또 얼마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쓰고 있는지를.
물론 인구가 많은 중국이 중국어와 한자를 쓰고 있으므로 세계 제일의 사용 언어가 됐지만 그 분포도나 전파성에서 비교가 안 된다

지도를 놓고 보면 영어, 스페인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등 많은 직간접의 로마자나 라틴어 계통의 언어가 쓰임을 알 수 있다.

고유 언어가 있는 나라들도 제2 공용어나 학습을 통한 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외교나 무역을 위한 언어도 대부분 영어나 스페인어, 불어 등 라틴어에 영향을 받은 언어들이고 학문 교류를 위한 언어도 비슷한 것이 현실이다. 표기만 로마자로 하는 나라까지 포함하면 수도 없다

곧 한글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한글날을 기리며 한글과 세종대왕의 업적을 찬양할 것이다. 해마다 그랬듯….

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할 것이고 우리말과 글은 우리 삶에서 찌들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그랬듯….

한 나라나 민족의 문화활동은 말과 글로 들어가고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로마의 예에서 보듯이 나라는 없어져도 그 문화와 말과 글은 살아 남아 그 생명력을 자랑한다.

작게는 우리말과 글을 지켜 우리 문화를 우리말과 글로 누리는 기쁨을 지켜 나가고 크게는 우리말과 글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

소수 민족에게 펼치는 한글 보급 운동도 중요하고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가르쳐 공용어로 쓰게 하는 것도 희망적인 일이다.

우리말과 자랑스런 한글이 세계 만방에 퍼지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려면 힘으로 로마가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가 문화면에서는 로마가 돼야 한다.

한글날은 한 해에 한번씩 쉬는 단순한 공휴일에 불과한 날이 아니다. 단지 하루만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기리고 지나가는 기념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매일매일이 되어야 하고 삶에 깊숙히 파고드는 우리말과 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일년 365일이 한글날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신문에 한자가 많은 걸 보고 외국에선 한국은 중국 글자를 쓴다고 가르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어 가고 생활 가운데 우리말이 힘을 쓰지 못하면 나라는 있어도 문화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면 우리 문화와 그 핵심 요체인 말과 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야 한다.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말과 글을 한자와 외국어, 외래어의 굴레에서 풀어낼 수 있는 진짜 실천이 필요하다.

새로운 물건이나 개념을 우리말로 이름 붙이고 우리말과 글로 학문을 해나가는 일이 자리 잡히도록 해야 된다. 언론에서 순우리말 소설을 큰 돈을 내걸고 공모하는 일도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북한과 순우리말에 관한 학문적 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통일을 대비한 좋은 준비가 될 수도 있다.

로마처럼 말과 글로 세계를 정복하진 못해도 우리 고유의 말과 글로 우리 문화의 독립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