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강아지풀
[茶 한잔의 여유] 강아지풀
  • 국토일보
  • 승인 2014.09.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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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강아지풀

 
그 길고도 무덥던 여름 내내 온 산하를 덥고 있던 개망초꽃이 모습을 접으며 지금은 온 산하에 강아지풀이 가득하다.

볏과에 속하는 강아지풀은 길가나 들에 피는 1년생 잡초로서 꽃은 연한 초록색 또는 자주색 이고 꽃에는 약간 긴 털들이 달려 있어 강아지 꼬리처럼 부드러워서 코끝에 대고 살짝 흔들면 간지럽다.

볏과에 속한다지만 강아지풀의 생김새는 조나 수수처럼 그 털(꺼럭)의 방향이 한쪽으로 되어 있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면서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면 자신의 몸 쪽으로 움직여 강아지풀이라고 부르는데, 작은 바람이라도 일면 쉴 새 없이 흔들려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차라리 내 몸이 흔들리는 것 같다.

 강아지 풀
쉴 새 없이 흔들리다보니 고양이가 좋아해 흔들리는 풀꽃을 잡으려고 하지만 워낙 부드럽게 흔들려 잡히지 않는다.

산하에 가득한 이 작은 풀을 볼 때마다 ‘결초보은:結草報恩-풀을 엮어 은혜를 갚는다’란 말이 생각난다. ‘결초보은’에 나오는 풀은 비슷하게 생긴 량미초 또는 그령이라는 풀이라고도 하는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강아지풀은 결초보은에 나올만한 생김새의 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해오는 얘기로 진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젊고 예쁜 꽃첩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위무자가 병으로 몸져눕게 됐다. 아직 제 정신일 때 그는 아들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했는데, 그 뒤 병이 심해 정신이 없을 때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은 좋은 남자를 찾아 그 여인을 재가 시켰다. 주변에서는 아비의 유언을 따르라고 했으나, 유언의 내용이 서로 다르므로 정신이 있을 때 한 유언을 따르는 것이 옳다 생각하여 순장을 하지 않고 재가를 시켰던 것이었다.

후에 다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서 그 아들이 전쟁에 나갔다. 그러나 적장의 무력이 워낙 강해서 그는 칼을 들고 쫒아 오는 적장에게 쫓기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쫓던 적장의 말이 엮어진 강아지풀에 걸려 넘어지며 적장은 낙마를 하며, 그는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나고 오히려 낙마로 부상을 당한 적장을 생포하여 큰 전공을 세우게 된다.

그날 밤,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그대가 재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풀을 엮어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라고 했다.

사위지아자사(士爲知我者死)라 하여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다. 중국 사기의 ‘자객열전’에 진나라의 ‘예양’이란 자가 나온다. 처음에 범씨와 중향씨를 섬기다가 후에 ‘지백’이란 자를 섬기게 된다.

지백은 성격이 모질고 거칠었지만 예양에겐 극진하게 대했다. 후에 범씨와 중향씨를 멸망시킨 지백이 조양자를 공격해 전투가 벌어 졌는데, 그 전투에서 지백이 패하여 후손마저 끊기게 됐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고 조양자의 처소에 침입해 칼을 휘둘렀으나 실패하고 만다. 취조 결과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자 조양자는 그를 풀어준다. 선비가 옛 주인의 원수를 갚으려 한 충정이 인정돼 오히려 의인으로 상각했던 거였다.

첫 번째 실패 이 후 또다시 암살을 시도 했으나 역시 실패를 하여 붙들리고 만다. 그 때 조양자가 묻는다. ‘처음에 범씨와 중향씨를 모셨는데 그 들이 죽었을 때는 가만있고 어째서 지백의 원수만을 그렇게 끈질기게 갚으려고 하느냐’고….

그 때 예양은 ‘그들은 나를 그저 평범하게 대해서 그런 것이고, 지백은 나를 아주 특별하게 알아주었기에 그의 원수를 갚으려 한 것이다. 조양자의 옷이라도 벗어주면 그 옷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은 거로 하고 향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건네자 조양자는 기특하게 여겨 자신의 옷을 벗어 주고, 예양은 옷을 칼로 벤 후 그 칼로 자결을 하고 만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선비들은 눈물을 흘렸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경우가 어찌어찌 선비의 경우 뿐이랴. 누구든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에게 보은을 하게 되니, 위(魏)나라의 장수 오기가 전투 중 그의 부하가 종기를 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손수 그의 종기를 빨아주었다. 그 얘기를 들은 병사의 어미는 엉엉 울었는데, ‘장군께서 그대의 아들에게 그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데 왜 우느냐?’는 질문에 “장군이 그 아이의 아비도 똑 같이 종기를 손수 빨아 주었는데, 그 아비는 몸을 돌보지 않고 장군을 위해 싸우다 전사를 하였는데 그 아이도 또 그 장군을 위해 전사를 할 것 아니겠느냐?”고 했단다.

이런 얘기는 수도 없이 많다. 어느 큰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장수들을 왕이 손수 위로잔치를 해 주는 자리에서, 우연히 강한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졌을 때 평소 왕의 애첩을 좋아하던 한 장수가 어두운 틈을 타서 애첩의 가슴을 만지며 끌어 안았는데 애첩은 그의 갓끈을 떼고 왕에게 갓 끈이 없는 자가 범인이니 속히 불을 켜서 그를 처벌하라고 일러바쳤다.

그러나 왕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갓 끈을 떼라고 하여 불을 켜고 나서 아무 일도 없도록 했다. 그 후 큰 전쟁이 났을 때 왕의 군대가 패해 왕이 죽을 상황이 됐다. 모든 장수가 제 몸만 사리고 있을 때, 어느 장수가 온 몸에 부상을 입은 채 왕을 구하고는 “그 때 갓끈을 뜯긴 자입니다. 이미 죽었을 목숨을 이제 왕을 위해 죽습니다”라며 왕을 구하고 자신은 전사를 했다.

가을이다. 이 좋은 가을 밤, 과연 나는 주위를 살피고나 있는 건지, 또 내가 살아오면서 입은 작은 은혜라도 혹여나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가을 밤 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