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쌀밥
[茶 한잔의 여유] 쌀밥
  • 국토일보
  • 승인 2014.08.29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前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쌀밥
 

 
70년대 중반 무렵 남한에 큰 홍수피해를 입었을 때 이북에서 옷감과 쌀을 지원해주어 옷감은 보자기를 만들고, 쌀은 밥을 지어 먹기엔 품질이 떨어져 가래떡을 만들어 주변과 나눠 먹던 생각이 난다. 

한동안 지원을 중단하고 있지만 매년 이북에 지원하던 쌀의 량 30만 톤은 360만 가마(1톤/80kg=12가마, 30만톤×12가마 =360만 가마)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으로 남한에서 1인당 연간 소비량이 한 가마도 안 되는 73kg을 기준할 때 400만 명이 1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사실 쌀은 우리에게 모든 것으로 논이나 집을 사고 팔 때 등 통화의 수단일 뿐 아니라  쌀은 언제나 모자라고 귀한 것의 대명사였다. 그 귀하던 쌀이 지금은 너무 많이 남아돌면서 이젠 그 처리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적정량이 넘는 잉여 분 쌀의 관리비로 한해 수천억 원 정도 든다고 한다.

등숙기(벼 낟알이 본격적으로 여무는 기간)인 8~9월의 기상조건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지만 통상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은 연간 480만 톤 정도로, 한 가마가 알속(가마니 등의 피를 뺀 순수)으로 80kg 기준(48만톤/ 80kg=)약 6,000만 가마로 남한 인구 5,000만 명이 연간 한 가마씩 먹어도 1,000만 가마는 남게 되니(외국에서 수입분 별도) 쌀이 천덕꾸러기라고 할만도 하다.
 
쌀이 귀하고 모자라던 시절 부자들이야 먹기 부드럽고 맛있는 쌀밥을 먹었겠지만 일반인들이야 그게 어디 가능했겠나. 밥을 할 때 솥 안 바닥에 보리쌀을 깔고 가운데 쌀을 조금 넣어 아버지 밥은 쌀이 많이 들어가게 푸고 나머지 식구들은 서열에 따라 점점 보리쌀이 많아지도록 밥을 풀 수밖에 없었으니….

매주 토요일을 분식 날이라고 정해 전국의 온 식당에서 밀가루 음식만을 팔았으며, 혼식 장려(강요)로 교사가 학생들 도시락에 혼식여부를 매일 확인을 했다. 그러던 것이 소출이 일반 벼보다 훨씬 많은 통일벼라는 혁신품종을 만들어서 쌀의 자급을 해결했다.

그러나 식생활의 변화로 1인당 쌀 소비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밥맛이 좋은 쌀만을 선호하게 되면서 밥맛이 없는 통일벼의 생산은 진작 중단됐다.
 
한동안 우리나라에 알랑미라는 이름으로 원조됐던 안남미가 생산되는 지역은, 일본과 프랑스의 식민지 이전에 약 1,000여 년간 중국의 식민지 이었던 베트남인데 그때 중국에서는 베트남을 ‘안남’라고 불렀다.

그 후 프랑스도 그 주변을 삼등분하여 식민지화 했을 때 중간부분을 역시 ‘안남’이라 불러서 안남미가 된 것이다. 동남아에선 찹쌀처럼 차지지 않고 부슬부슬해 소화가 잘된다 하여 가늘고 길며 쌀눈이 없는 그들의 쌀 안남미를 선호한다.
 
사실 우리나 일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쌀은 ‘아키바레’라 하여 밥을 했을 때 부슬부슬하지 않고 차진 쌀인데, 쌀시장개방의 압력으로 수입되는 쌀 중에는 아키바레와 비슷한 미국의 칼루스 쌀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칼루스 쌀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쌀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우리가 통일벼 쌀을 먹던 시절 미군부대를 통해 반입된 그 쌀은 밥맛이 좋아 일부 특권층만 먹었는데, 지금은 입맛의 인플레로 그나마 찾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에선 각 지역마다 명품 쌀이라 해 판매를 하지만, 전통적으로 경기미를 가장 알아주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입맛에 맡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쌀로 지은 밥은 많은 반찬이 필요치 않고 그저 간장 하나만 갖고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쌀의 종류는 우선 정부미와 일반미로 구분되지만, 주로 통일벼였던 정부미는 맛이 없는 쌀로 치부됐고, 때론 공무원의 속칭으로도 쓰였다. 일반미는 이름도 퍽이나 다양한 것 같다.
시합할 때 경기미, 노래하던 조미미,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도정을 덜한 쌀 현미, 일본서 납치된  메구미, 코미디언 이성미….

외국에서도 쌀의 종류가 제법 통화할 때  Call  me(미), 사랑해요  Kiss  me, 봉선 화  Don't touch me, 물망초  Don't  forget  me, 장타난다 위 성미….
 
“산의 도토리나무는 들판 내다보며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들판에 흉년이 들면 열매를 많이 달아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게 하구, 풍년이 들면 열매를 적게 달아 내년을 대비하게 되고….

“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영근다”고 했다. 손이 많이 가고 주인이 논에 자주 가서 정성을 다해 돌보아야 잘 영근다는 말이다. 한자로 이 쌀 米자를 해자(垓字) 해보면 ‘팔십팔:八 + 十 + 八’이 되는데 적어도 팔십 팔 번의 손이 가야 우리 식탁에 밥으로 올라 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미국을 ‘美국’으로 일본에서는 ‘米국’으로 부르는데, 어떻게 부르든 간에 쌀의 소중함에 대한 필자의 인식이 변화되지는 않을 듯하다.

어릴 때 고향 마을의 어떤 노인이 “단 한번만이라도 하얀 쌀밥에 파나물(약간 삶아서 뿌리 쪽으로 돌려 감아 한입에 먹기 좋게 만든…)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 말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며, 비록 쌀이 남아도는 세상일지라도 어려서 부터 각인된 쌀에 대한 소중한 마음은 가벼워 지지 않을 것이다.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을 맞아 올해 새로 수확된 햅쌀로 차례 상을 차리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먹는 이 한 그릇의 쌀밥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숫한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을 생각하면 밥그릇 끝에 붙은 몇 개 밥알마저도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