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19>
[안동유의 세상만사] <19>
  • 국토일보
  • 승인 2014.07.04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 명화인지는 모르나 유명한 영화인 친구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베스트셀러가 꼭 양서는 아니라는 고집이 있어 관객이 많이 든 영화라고 점수를 많이 주지는 않는 인색이 적용됐다.)
“고마해라 마이 뭈다 아이가?”와 더불어 회자되는 대사이다.

일본말을 경기들 정도로 싫어하지만 실생활에선 너무도 낯익은 말이 돼 버린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표상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다바리다.

지금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로 미싱 시다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미싱은 머신의 일본식 발음이고 시다(바리)는 보조, 심부름꾼 정도의 일본말이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봉제공장의 재봉틀 일을 보조하는 사람을 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고 하면 ‘내가 너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머슴이냐? 심부름꾼이냐?’ 정도의 뜻이 된다. 영화에서 장동건이 유오성의 그늘에서 처음 자존감이 꿈틀대어 내뱉는 말이다.

예전엔 먹고 살기 힘들어 어린 나이에 일찍 이런 ‘시다’일을 하며 입이나 하나 줄이고 일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발사 시다도 그 중의 하나다. 이발소의 허드렛일이나 하고 손님의 머리도 감겨 주고 하며 밥을 얻어먹고 박봉에 기술을 배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70년대 초. 1973년으로 기억된다. 우리 동네 이발소에 시다 형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쯤 됐다. 내가 3학년, 우리 형이 5학년일 때였다. 참 못됐게도 철없는 우린 집안이 가난해 진학도 못하고 이발사 시다를 하는 동네 형을 대놓고 놀렸다.
“시다. 시다”하며.

그 땐 커 보였던 그 형도 생각해 보니 어린 나이에 설움도 많았을 터. 다 가난하던 시절의 아픈 기억이다. 그 형한테 나와 같은 학년의 동생이 있었는데 형을 놀리는 내가 미웠던지 무척 나를 괴롭히는 친구였다.

하루는 시비가 붙어(모래도 없이 맨땅에 그네 몇 개 세워 둔 놀이터 같지 않은) 동네 놀이터에서 싸움이 났는데 그 형과 그 친구가 보고 있고 우리 형이 보고 있는 데서 그럼 싸워 보라고 그래서 정식으로 결투가 시작 됐다.

비겁하지 않게 싸우기. 코피나면 지는 것. 코흘리개들의 결투도 나름대로 규칙은 있었다. 싸우다 같이 넘어 갔으나 덩치는 걔가 컸지만 깡이 좋은 내가 넘어진 그 친구 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이제 코피만 내면 승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걔 형과 그 친구가 나를 밀쳐 넘어뜨려 놓는 것이 아닌가.

다시 올라 가니 또 밀어 넘어뜨리고…. 우리 형이 항의했지만 중학생 나이 둘을 5학년이 혼자 상대할 순 없었다. 결국 코피가 난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승리에 의기양양한 그 친구와 형들은 신나서 돌아 갔다.

집에 오며 서럽게 울었다. 물론 아파서 또 피가 나서 울었다. 하지만 맘 한구석서 정말 억울했다. 다 이긴 싸움을 강자들이 개입해서 뒤집어 놓은 것이 너무 서러웠다.

집에 와서 코피가 멈추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가 그 집에 가서 난리를 치고 다같이 가난했던 처지에 그 당시 귀했던 달걀을 위로의 선물로 들고 온 그 집 엄마의 사과로 마무리 되었지만 내내 억울한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왠지 가끔씩 그 생각이 나긴 했지만 살면서 그런 억울한 일은 다시 당하지 않을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이 사회는 공정하게 움직이고 내가 내 힘으로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뒤엔 꼭 누가 있었다. 실력으로 공정하게 평가돼야 하는 일이 마치 어린 아이들 싸움에 형들이 끼어들어 위에 있는 애를 밀쳐 내어 아래로 깔리게 하듯 힘있는 자들의 개입으로 결과가 뒤집히기 일쑤였다.

그 때 그 형에겐 철없이 놀려서 미안한 맘이 내내 있었고 따지고 보면 다같은 어린 아이들의 시시껄렁한 힘겨루기였지만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겪는 뒤집기는 맘 깊은 곳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런 억울함은 나만의 몫은 아닐터. 뼈빠지게 고생했는데 열매만 가로채는 그들에게 이 땅의 많은 민초들은 외치고 싶을 것이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마이클 샌델에게 묻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