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18>
[안동유의 세상만사] <18>
  • 국토일보
  • 승인 2014.06.23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동유 부지점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지점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씨(설비건설공제조합 광주부지점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부지점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부지점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녹고에 웃고 연고에 울다

학문이란 게 연마하다 보면 주변 학문까지 같이 알아야 더 깊은 공부가 될 때가 많다.
경영학은 경제학과 회계학을 같이 공부해야 이해가 더 쉽듯 법학은 행정학과 정치학을 관련 학문으로 공부해야 더 폭 넓은 이해가 된다. 물론 개론 수준의 수박 겉핥기식 공부에 불과하지만 명분은 그렇다.

행정학은 법학과 달리 미국이나 서구로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 강단에 서는 경우가 많다. 학창시절 행정학 강의를 듣는데 미국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이 강의를 하셨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학문의 가장 큰 단점은 한자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데 있다.

법학은 특히 그렇고 행정학도 그 못지 않다. 한자 공부를 따로 해야 강의를 이해해서 진도를 따라 나가고 혼자 책을 읽을 때도 한자가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가끔 외국서 오래 공부하다 온 분들이 한자를 못 읽거나 잘못 읽어 웃음이 터지는 해프닝이 일어 나기도 한다.

행정학을 강의하던 그 교수님이 열을 내어 강의하시다가… 사실 진짜 침까지 튀기면서 연고주의란 말에 와서 연과 비슷한 녹으로 잘못 읽어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녹고, 녹고주의라 읽은 그 분은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어를 잘못 읽은 거나 한자를 잘못 읽은 거나 다를 바가 없을텐데 한자를 잘못 읽으면 유난히 창피하게 생각하는 게 우리 습관이다. 어차피 한자란 남의 글이고 잘못 읽을 수도 있는 건데….

더구나 중국 사람도 다 모르는 한자고 잘못 읽기도 하는 한자다. 여하튼 그날 우린 폭소를 통해 잠시 스트레스를 날리는 작은 선물을 받았다.

어느덧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정작 연고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엔 혈연, 지연, 학연이란 대표적인 연고가 고질병처럼 뿌리박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휩쓸어 온 지연은 지역주의란 이름으로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했다. 그래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혈연, 지연, 학연을 청산하자고 외쳐 왔고 그 성과도 어느 정도 있어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요즈음 새로운 연고가 등장해서 이 사회를 질곡으로 몰아 넣고 있다. 주로 IMF 사태 이후 기업이나 금융권이 이합집산 되면서 합병되고 통합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출신연이다. 두 개의 은행이 합쳐서 새로운 은행이 된 경우가 많다. 수익성을 따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출신에 따라 내부적 주도권 다툼이 알력으로 불거지는 부작용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양쪽의 고위직을 대우해 주기 위해 은행에 없던 회장이란 직함을 만들어 은행장과 회장의 알력으로 시끄러운 잡음이 불거진 사례가 최근에도 발생했다. 두 개의 조직과 그 구성원이 화학적으로 녹아들어 새로운 결합을 한 것이 아니라 각각 제 뿌리를 유지한 채 무늬만 통합이 된 경우가 많다.

이른바 물리적 결합으로 녹지 않고 서걱거리는 알갱이가 씹히는 통합이다.

새로운 조직이란 용액에 완전히 녹아 들려면 떠나온 고향을 생각지 않아야 한다. 누가 주도권을 잡으면 그 사람은 자기와 같은 출신 인사만 중용한다. 그것이 출신연의 병폐다.

그래서 같은 조직 출신끼리 똘똘 뭉쳐 생사를 걸고 이해 관계를 같이 하며 유력한 사람을 밀어 최고위직에 앉히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줄서기와 출세우기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교과서에선 배우지만 실제 사회 생활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참 세상이란 쉽지가 않더라. 학창시절 녹고에 웃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고에 울게 되었다.

출신연은 그 한 이유가 된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비정상을 정상화한다고 하던 대통령도 자기 사람만 챙긴다고 말이 많고 소통의 문제가 있어 불통이란 비아냥을 듣는다. 인간의 성정이 원래 그런 탓도 있고 우리 사회가 오랜 인습을 못 벗어난 것도 있을 것이다.

은행 뿐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온 많은 기관장들도 역시 그런 유혹을 못 벗는다. 은행이든 기업이든 아니면 정부 산하기관이든 무릇 새로운 장들은 소위 자기 사람을 챙길 것이 아니라 조직을 챙길 일이다.

그게 큰 그릇의 도량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