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리뷰] ‘수퍼갑’의 횡포
[전문기자 리뷰] ‘수퍼갑’의 횡포
  • 이경옥 기자
  • 승인 2014.04.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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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문기자 리뷰

[국토일보 이경옥 기자] 갑을관계. 갑을이란 계약서 상에 계약자 당사자를 단순히 ‘갑’과 ‘을’로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어느덧 관용적으로 ‘갑’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계약자 ‘을’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계약자로 둔갑해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다.

건설·건축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공사를 수주하고 이를 진행해야하는 특성 상 갑을관계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 업계의 대표적인 제1수퍼갑은 국토교통부다. 당장 업계가 아니어도 국토부 산하 기관들을 출입하다보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려오기 일쑤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식’, ‘공무원 사회 특성 상 새로운 규제개혁, 제도개선 등을 꺼리고 기존 관행만 답습’ 등 애로사항을 토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는 더 심하다. 국토부를 비롯 산하 기관들까지 통틀어 ‘수퍼갑’의 횡포가 만연해있다.

얼마 전 국토부 정식 허가를 받고 협회를 꾸린 한 단체는 “수년간 정식 허가를 받기 위해 서류 만들고, 관계자들 만난 것들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원래 정해진 검토 기간에서 벗어나 수개월 후 답변을 듣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공공공사 프로젝트를 하면 할수록 손해만 보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공공택지에 아파트를 건설하던 한 현장소장은 “사실상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건축업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규모 건축물 감리제도 개선의 경우도 갑을관계의 폐해로 인한 부작용을 줄여보자는 취지가 크다.

기존 소규모 건축물은 건축주나 집장사들이 ‘갑’이 돼 위법과 부실에 대한 감리를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감리자가 갑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얘기다. 발주자와 시공자가 동일하고 설계자가 감리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적인 지위로 감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축사들을 만나보면 갑을관계에 따른 폐해는 더 심각해 보인다. 건축주가 ‘갑’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기란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건축사에게 준공 조사검사업무를 위탁하는 경우에도 당초 수고비를 주게 돼 있지만, 이를 그냥 무시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갑을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부실설계나 공사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사고, 그리고 비리 등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끗 차이’가 대참사를 부르는 법이다.

언제까지 잘못된 일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시변통으로 고치는 땜질식 처방으로만 위기를 모면할 수는 없다. ‘수퍼갑’의 횡포,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주길 촉구한다.

kolee@ikl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