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12>
[안동유의 세상만사] <12>
  • 국토일보
  • 승인 2014.03.3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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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 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장애인과 친구

학창 시절 캠퍼스에서 선배를 부르는 호칭이 참 이상했다. 80년대라 학교엔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비밀 동아리 활동이 많았고 이른바 군기는 엄격했다. 동아리 활동은 늦은 시간까지 은밀하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고 여자라고 봐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나약한 여성의 모습은 퇴폐적 낭만주의로 규정됐다. 따라서 호칭 또한 오빠나 선배보단 형이란 성별을 초월한 호칭으로 불렸다.

아무리 이념 동아리라고 해도 남녀가 모인 곳에선 사랑도 싹트는 법이라 짝(이른바 캠퍼스 커플)이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도 오빠란 낯간지러운 호칭보단 형이란 호칭이 선호됐다.

이런 호칭은 유행이 돼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불려졌는데 동문회나 같은 과에서도 형이라고 자주 불렸다. 그런데 이렇게 형이라고 부르던 남녀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일들이 생기자 다시 이런 호칭도 기피하게 돼 선배나 오빠가 섞여서 쓰이기도 했다.

우리는 접대부라고 하면 술집 종업원을 연상해서 싫어하지만 북한에선 공식 직함으로 각종 연회나 만찬의 시중을 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족의 여자를 아씨라고 부른데서 유래하여 귀한 댁 여인을 아가씨라고 불렀는데 술집에서 그렇게 부르다 보니 지금은 아가씨라면 내가 술집 아가씨냐고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래 전 청소부로 불리던 거리를 청소하던 분들을 환경미화원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자고 해서 그렇게 바꾸어 부르게 됐다. 청소부는 사람을 비하하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품위있게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환경미화원을 청소부보다 더 낫게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게 된 건 오히려 실업률 증가로 직장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고 국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거지 호칭 때문에 바뀐 게 아니다.

형과 오빠로 시대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듯이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호칭이 인플레이션 됐을 뿐이다.


최근 공익 광고 방송에 나경원 전의원이 나와서 장애인을 생각해서 장애우라고 부르는 건 장애인들이 싫어하니 그냥 장애인으로 불러 달란다. 특별 대우해 주는 건 오히려 값싼 동정으로 비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장애우라고 이름 붙인데는 사실 그런 뜻이 들어 있다. 하지만 ‘벗 우’자가 들어가 장애인과 친구가 되자는 아주 좋은 뜻이다. 불치병 환자를 환우라고 부르며 가까이 지내고자하는 것처럼…. 작성시 의도가 좀 문제가 있으나 장애우는 정말 좋은 호칭인 것이다.

장애인과 관련해서 또다른 호칭 문제는 몸이 성한 사람들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장애인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정상인이라고 부르면 장애인이 비정상인이라고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비장애인이라고 규정하면 개념적으로 장애인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또 존재하게 된 것 같은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나는 그냥 몸이 아픈 사람, 몸이 성한 사람으로 부른다.

호칭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질이다.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면서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면 뭐하나? 장애인에 대한 물질적인 복지는 과거보다 좋아졌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장애인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여건은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장애인은 인간이다. 양계장에서 닭모이 주듯 격리하여 기르는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갖추고 있는 존재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그 중에 핵심은 직업을 가지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노동울 통하여 삶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자존감 달성과 자아성취를 하고 사회의 적선 같은 도움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 활동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꿈꾼다. 장애인과 성한 사람이 같이 사회생활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그 날을. 보도의 턱을 없애고 전철역에 리프트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때 장애인도 정상인이 되는 것이다. 말만 비장애인이라고 장애우라고 미화하지 말고….

말로만 장애인에게 특별 대우하는 이 사회에 묻고 싶다. 진정 장애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