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11>
[안동유의 세상만사] <11>
  • 국토일보
  • 승인 2014.03.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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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 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산가족 애끓는다?

이산 가족이 최근에 상봉을 했다. 어렵게 만났다. 남북한의 당국자들 노력과 우리 국민의 염원이 받아 들여진 결과다. 물론 이산가족 당사자들이 간절한 바람을 모두어 기원하기도 했고….

남북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이면 사정이 작용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한데 다시 헤어져야 했다. 생이별…. 어떻게 만났는데….

애끓는다고 뉴스에 나온다. 애는 창자를 말하는 순우리말이다.
장자에 보면 새끼 원숭이를 잡아 배를 타고 가는데 어미가 새끼를 찾아 강을 따라 오며 울부짖다가 죽어서 속을 갈라 보니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는 일화가 소개돼 있다. 단장이란 말의 유래다. 그래서 애를 끊는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의 시조에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돼 있다. 애끊다가 언뜻 애끓다로 보여 잘못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쉽다.

말이란 게 그래도 그렇게 쓰면 또 쓰이는 것. 입이 걸다를 날려 쓰다가 입이 질다로 잘못 보고 그렇게 쓰기도 한다. (북한에 이런 예가 보인다.)

그래도 굳이 잘못됐다고 할 것은 아니다. 오분석이나 민간어원설로 새로운 말이 생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애끓는다고 하니 애끓는다도 표준말이 됐다. 속이 끓듯 애가 끓는다고 사전에 풀어 놓았지만 억지 해석이다. 명백히 끊는다의 민간어원설이다.

파리는 원래 팔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팔이 날아든다” 또는 팔이 어떻게 한다고 붙여 쓰다 보니 팔이(파리)가 하나의 낱말로 됐다.

경상도엔선 어린 애들이 뱀을 배미라고 쓴다. 뱀이, 뱀이라고 쓰는 게 굳어졌다. 마산이 고향이라 어릴 때 그런 말을 많이 쓴 기억이 있다. 아직 표준말로 인정은 안 되었으나 파리와 비슷한 경우다.

말을, 문법을, 규칙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면 새로운 말은 생길 수 없고 언어는 변화하고 발전할 수 없다. 맞춤법이나 표준말 규칙을,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물론 맞춤법과 표준말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지된 시점을 잘라서 생각하면 말은 문법에 맞게 써야 한다.

그러나 말은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유기체 비슷한 존재다. 흔히 말은 신생, 성장, 사멸한다고 한다. 나는 금과옥조를 지키고 남은 어겨 주면 되겠지만 모두가 굳게 지키면 절대 자연스레 발전할 수가 없다.

사비니는 독일민법을 성문화하는 걸 반대하며 말과 법은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자연스레 발전한다고 했다. 그래서 역사법학파란 이름을 얻게 됐다. 티보와 치열한 논쟁은 유명하다.

문법은 말글살이를 바르게 잡아 주는 기준선 역할도 하지만 말의 자유롭고 자연스런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양날의 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은 물흐르듯 자연스레 역사와 발전을 함께한다고 본다.

서울말이 다 표준말도 아니다. 처음 서울 와서 손을 닦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씻지도 않은 손을 닦다니? 유명한 서울 사투리다. 손을 씻는 걸 닦는다고 한다. 아직 세력을 얻지 못해 표준말로 인정되진 않았다.

멍게는 사실 처음엔 표준말도 아니었다. 우렁쉥이가 표준말이었다. 경상도 방언이 표준말인 유일한 말이다. 근데 하도 서울 사람들이 멍게라고 하니…. 결국 지금은 멍게도 표준말이다.
오히려 우렁쉥이가 세력을 잃고 밀려나고 있다. 인구의 힘이다.

말이란 이런 것. 사회적 약속이다. 많은 사람이 쓰면 그게 표준말이 될 수 밖에 없다. 세력을 얻는 말이 시쳇말로 갑이다. 말의 헤게모니를 쥔 몇몇 학자들이 쓸데 없이 표준말을 억지로 정해도 말무리들이 밀어붙이면 그게 답이다.

짜장면을 틀리다하고 자장면(정말 간지러운 발음이라서 개인적으론 손발이 오그라든다.)을 표준말이다 하다가 말무리들이 힘차게 짜장면이라고 꿋꿋이 발음하니 결국 손들고 짜장면을 표준말로 인정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말만큼은 억지로 하지 말자.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학자들은 말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몇몇 배운 학자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맘대로 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말무리들의 것이다. 정치 권력처럼. 학자들의 임무는 말무리들의 말글살이를 분석해서 이런 약속을 하고 있구나하고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규칙을 널리 알려서 말무리들의 말글살이를 더욱 가멸게 해 주는 것이다.

말의 권력을 이젠 말무리들에게 돌려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