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9>
[안동유의 세상만사] <9>
  • 국토일보
  • 승인 2014.02.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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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 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훈장보다 빛나는 들꽃

오십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 아이들의 드라마나 만화를 좋아한다. 가끔 일찍 퇴근해 어린이 시간대에 하는 어린이를 위한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동심을 찾아 주기도 하고 의외로 배울 점이 있어 시간만 맞으면 즐겨 본다. 이는 철이 덜든 나의 유치한 흔적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드라마 가운데 유독 잊혀지지 않는 몇 년 전에 본 그림 형제 이야기가 가끔 생각난다.
아다시피 그림 형제는 독일의 동화 작가이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어릴 때 그림 동화라고 해서 말 그대로 그림이 있는 동화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작가 이름이 그림인 걸 알고 혼자 한참 웃었다. 우리가 잘 아는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숲 속의 잠자는 미녀, 개구리 왕자 등이 다 그림 형제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림 형제의 창작이라고 할 수는 없고 수많은 전설과 민화를 모아 정리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진실에 맞다. 그런 그림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제목은 잊었지만 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그림 형제는 여자 이야기나 요즘의 통속 소설이나 연애 이야기 쯤에 해당하는 소설을 쓰라는 출판업자의 요청을 끊임없이 받는 것으로 나온다. 짐작대로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숙명을 가진 상인의 뜻이다.

하나, 그림 형제, 특히 형 야코프는 어린이들이 읽을 책이 없고 아이들은 그런 동화에 목말라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끝까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고자 한다.

형인 야코프는 아이들의 이야기나 전설 민담을 채집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이야기꾼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채록 수집한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마녀로 불리는 늙은 여자-노처녀로 혼자 사는 것 같았다-를 성당의 합창단 아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 찾아 가는 걸 알고 야코프도 아이들을 추적한다.(그 성당의 신부에게 아이들이 도망 나간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 신부가 웃으며 이 지방 아이들은 누구나 거기 가서 그 여자가 해 주는 이야길 듣는다고 하며 자기도 어릴 때 그랬다고 고백한다.)

아이들만의 세계에 끼어 들지 못하게 아이들은 야코프를 따돌리며 ‘숲 속의 마녀’를 찾아가 자리 잡고 앉는다.

겨우 숲 속 오두막을 찾아 갔지만 이야기꾼인 이 여인에게 쫓겨 나와 창가에서 그 이야길 듣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용이 나오고 기사가 비겁하게 도망 다녔지만 시종이 용감히 싸워 용을 물리치는데 기사가 그 시종을 죽이고 상으로 공주를 차지하는 내용이다. 그 무시무시하고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꿈을 키웠던 것이다.

야코프는 비를 맞으며 그 이야기를 갖고 있는 종이에 적는다.-아마도 언어학자인 야코프로서는 생계를 위해 연구를 위탁을 받은 중요한 자료인 종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야기를 수집해 책으로 엮어 내놓았지만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던 당시엔 이익이 남는 장사는 되지 못했다.

동생 빌헬름은 그래도 조금 현실적인 일을 해서 생계를 도운 것 같다.

유력자인 지방 제후의 개인 전기를 대필해 주고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베를린에서 역사학자이기도 한 이들 형제를 초빙해 왕립 아카데미에서 상을 주기로 한다.

동생의 활동이 어느 정도 인정 받아서이다.
형이 나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묻자 동생은 공동 작업이니 당연히 같이 가야된다고 형을 이끈다. 베를린 역에 시골 학자를 마중나온 근엄한 학자들이 마지못해 촌뜨기들 상이나 하나 던져 주는 기분으로 훈장을 들고 나온다. 내키지 않지만 상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배려를 표하는 것이다.

머뭇거리며 플랫폼으로 나오는 이들 형제를 진짜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야코프는 왜 왔냐며 의아해 하는 왕립학회의 풍채 좋은 몇몇 학자들과 권위 있는 훈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들을 위해 재밌는 이야기로 갈증을 풀어 줬던 그림 형제, 특히 학회에선 안중에도 없던 야코프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들꽃 다발이었다.

역 울타리 여기저기서 “왔어? 왔다.”고 속삭이며 삐죽삐죽 머리를 내밀던 아이들이 일제히 와하는 함성과 함께 마치 아이돌 가수를 기다리는 팬들처럼 야코프에게 몰려 들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초라하지만 빛나는 들꽃 다발을 안긴 것이다.

영문을 몰라 놀라는 근엄한 학자들의 위선을 보기 좋게 뭉개 버리며….
잠시 눈물이 고이는 야코프를 클로즈업하며 드라마는 끝나지만 그 장면은 내내 가슴에 남았다.

때로는 낮보다 밝은 밤도 있고 훈장보다 빛나는 꽃다발도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