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8>
[안동유의 세상만사] <8>
  • 국토일보
  • 승인 2014.01.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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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 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

‘0’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대개 그냥 무관심하게 스쳐 지났을 것이다.
아~. 아라비아 숫자에 1, 2, 3, 4… 등, 등이 있는 것처럼 그냥 정해 놓은 숫자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아라비아 숫자에서 정해 놓은 기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득 우리가 숫자를 셀 때 1부터 시작하지 0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가 있다.

전표에 숫자를 기표해 본 사람이라면 여러개의 단위 숫자를 아래로 합래서 내려 갈 때 다른 숫자는 여러개가 합해지면(가령 1이 다섯 개면) 다른 숫자(5)를 기입하는데 ‘0’은 아무리 많이 더해도 ‘0’을 기록하게 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개의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히 ‘0’은 합하면 ‘0’이라고 배운대로 생각한다. 왜?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넘어 갔던 평범한 이 사실에서 조금만 궁금증을 가지면 ‘0’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왜 ‘0’은 아무리 합해도 값의 변화가 없고 ‘0’일까? 먼저 아라비아 숫자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 보자.

흔히 알 듯 인도에서 만들어진 숫자를 아라비아 사람들이 고쳐 써서 퍼뜨린 게 아라비아 숫자이다.

그렇다. ‘0’은 인도인이 발명한(사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먼저 이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보편화돼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건 인도와 아라비아 때문이다.)위대한 아니 인류 최고의 걸작품이다.

‘0’이 없으면 컴퓨터는 커녕 전화조차도 걸지 못한다. ‘0’이 없으면 우주선은 커녕 헬리콥터 한 대도 못 띄운다. ‘인도에서는 0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라고 정의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0’을 ‘없다’ 곧 무와 동일시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불교가 들어 오면서 도가에서 말하는 무의 개념과 혼동해서 그렇다.

‘0’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간단히 논증해 보자. 수직선을 긋자. 기준은 어딘가? 그렇다. ‘0’이다. 수직선의 한가운데를 표시하고 ‘0’이라고 쓰면 된다. ‘0’이 제 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것이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중 하나가 반야심경인데 이는 공사상을 잘 나타낸 불경으로 유명하다. 공이라…. 많이 듣던 이야기다.

007을 공공칠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0’이 곧 공이다.

반야심경에 ‘色不以空 空不以色…’이란 유명한 말이 있다. 색은 현상계요, 공은 감각의 세계를 초월한 절대적인 세계라고들 이야기한다.

색의 세계에선 보이지 않지만 공의 세계에선 분명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이런 개념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0’이다.

반야심경과 ‘0’은 이런 관계가 있다.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이고 따라서 오랜 흰두 철학의 소산이다. ‘0’도 마찬가지다.

‘0’의 모양이 재밌게도 이런 개념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건 양이 없다는 것, 그릇 가장자리처럼 둘레만 표시한 건 자리만 있다는 것이라고 보인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많다. 꼭 감각의 세계에 갇혀 내가 인식하지 못하니 그건 아니다하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된다.

장자는 無用之用을 말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쓸모를 발견하면 보이지 않던 이 세계의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좀 더 깊은 사고를 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