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추사체
[茶 한잔의 여유] 추사체
  • 국토일보
  • 승인 2013.11.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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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추사체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은 김정희라는 이름보다도 오히려 ‘추사체’로 더욱 이름을 알린 듯 싶다. 한자가 만들어진지 수 천년에 이르지만 한 인간이 태어나 그만의 서체를 완성해 후세에 그 이름을 떨치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도 저절로 그리 된 것이 없다’는 말을 통해 보아도- 타고난 재주와 함께 말 할 수 없는 각고의 노력이 따랐을 것이다.

추사체는 한마디로 고정관념을 깬 자유로움으로 딱딱한 글씨를 그림화 했으며 천진난만한 순수성, 그리고 강인한 힘으로 정리된다. 그는 서책을 보고 글씨 공부를 하지 않고 오래 된 전한시대의 비석에서 탁본하여 부단한 연습을 통해 상형문자인 한자의 획과 구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예서체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그가 금석학과 고증 및 서화골동의 감식에도 뛰어나게 됐으며, 한자는 중국사람이 만들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완성시킨 사람은 김정희라는 말을 듣게 된다.

본래 서체(한자체)는 아름다운 글씨체, 이상적인 서체, 근대화를 추구하며 읽고 쓰기에 편리하도록 발전되었다. 서체의 기본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전서 : 갑골문 등에 속하며 고대한자에서 발전된 오래된 서체.
2. 예서 : 전서체에서 발전된 오늘날의 한자
3. 해서 : 예서체를 정리한 서예의 기본체, 형태가 분명한 정자체.
4. 행서 : 해서를 흘려 쓴 체, 속도감과 선의 변화에 적정하며 흥취와 예술성이 강조.
5. 초서 : 필획을 간단히 한 체로 행서보다 읽기 편하고 속도감이 있음.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 선생의 고택. 너무나 단아하고 깨끗한 그곳엔 역시 글을 쓰는 양반의 고택이라선지 온통 기둥에 글씨가 붙어 있다. 이 집은 영조임금의 사위이자 그의 증조부인 김한신에 의해 지어진 집이다. 김한신의 막내손주인 김노경의 맏이로 태어난 추사는 팔봉산의 정기를 받아 잉태된 지 24개월 만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추사의 가문은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명필가가 줄을 잇고 있다. 혹자는 그의 고조부인 김흥경의 묘가 가야산 줄기가 끝나는 자리의 명당 중의 명당에 묘를 써서 명필가가 나왔다고도 한다.

고조부 김흥경과 증조부 김한신, 조부 김이주, 부친인 김노경까지 모두 당대의 명필이라고 불리웠고, 그런 가문에서 태어나 천재성을 지닌 추사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그는 70평생에 10개의 벼루가 닳아 구멍이 나고, 1,000자루의 붓이 다 달아 몽당 붓이 됐다고 한다.

문방사우(文房四友)인 붓, 벼루, 먹, 종이 중 필통에 꽂아 놓은 붓이다. ‘명필이 붓 가리랴’는 말이 있지만 일단 붓이 좋아야 글도 잘 써질 것 같다. 붓은 필통과 붓걸이(筆架) 붓밭침에 보관을 하게 되고, 종이는 문진․고비․지통(紙筒)에, 벼루는 연상(硯床)․벼루집 등에, 그리고 먹은 먹집․먹받침(墨床)에 보관하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먹통이란 말은 먹을 넣어 두는 그릇이 아니고 먹물을 이용해 금을 긋는 도구로, 답답하거나 쑥맥인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추사의 글씨는 간송미술관에 많이 보관돼 있다. 얼마 전 간송미술관 전시회 때 발행된 도록에서 발췌한 글씨이다. 경경위사:經經偉史 - ‘경학(經學)을 날줄로 하고, 사학(史學)을 씨줄로 한다’는 선비의 학문하는 방법을 쓴 내용으로 활달하고 굳센 전형적인 추사체이다. 우측으로부터 세 글자의 앞에 실사 변이 거듭되자 모양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주어 각 지거나 크거나 줄여서- 반복을 피한 글자 구성이 돋보인다.

‘해저니우함월주/곤륜기象노사견’ - ‘바다밑으로 진흙 소가 달을 물고 달리고, 곤륜산에서 코끼리가 타니 백로가 고삐를 끈다’는 내용인데, 佛敎에서의 禪詩로 수행의 단계를 나타내는 글이 아닌가 싶지만 정확한 의미야 고도로 도통이 된 고승만 알 수 있겠지만, 중간 아래에 있는 코끼리 같이 생긴 그림이 너무나 재미있어 보인다. 바로 코끼리 象 자를 저렇듯 그림으로 그려 넣었으니 당시 그는 코끼리의 코를 직접 본 듯하고, 이를 볼 때 그의 해학성과 천재성, 그리고 파격미가 확연히 보여진다.

 
‘명선-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든다’ 추사가 남긴 가장 큰 작품이다. 그의 문우(文友)이면서 그에게 좋은 차를 제공해주는 초의스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쓴 이 작품은 큰 글씨임에도 구성이 단단하며 강한 기상이 느껴진다.

근래 혹자는 입구(口) 변의 오른쪽 종획이 힘이 없어 천하의 추사가 쓴 글씨가 아닌 위작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첫 자가 차 명(茗) 자 임을 볼 때 다도를 즐기는 스님에게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대팽두부과강채/고회부처아녀손 - 좋은 반찬은 두부와 오이․생강나물이고,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자가 모여 있는 것이다’ 생전에 자식이 없던 그가 71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얼마 전 동네 잔치에 초대 됐다가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고 돌아와 쓴 글씨다.

죽음을 앞둔 조선 제일의 명필이 글의 내용만큼이나 모든 욕심조차 없이 쓴 이 글씨는 가로, 세로 모든 획들이 강인함 속에서도 춤추듯 자유롭고 천진난만하다. ‘획으로 그리는 그림’ 이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 천진난만 하기까지한 그의 마지막 이 글씨는 추사체의 결정체로 보인다.

추사 마지막 작품.<추사고택에 걸려있는 ‘대팽두부과강채/고회부처아녀손’ >

역사의 흐름 속에 시대가 변해 지금은 명필이 소용없는 시대이다. 컴퓨터에서 각종서체를 얼마든지 즉시 뽑아 쓸 수 있는 시대이지만, 언제 보아도 오래 된 도자기처럼 질박한, 그의 글씨에서 무한한 향수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