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유의 세상만사] <2>
[안동유의 세상만사] <2>
  • 국토일보
  • 승인 2013.10.2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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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유 팀장 /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

 
[안동유의 세상만사]

자유기고가이자 시인인 안동유 설비건설공제조합 법무보상팀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안 팀장은 KBS ‘우리말 겨루기’ 126회 우승, ‘생방송 퀴즈가 좋다’ 우승 등 퀴즈 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시민논객으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또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本報는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안동유 팀장의 ‘안동유의 세상만사’를 통해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한글이의 몸부림

끄~응 끙!
오늘도 한글이는 온 힘을 다해 힘든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비록 두 팔로 벽을 짚으며 온몸을 가누어 가지만 한 발 한 발이 너무 값진 발걸음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글이가 제 발로 힘차게 못 걷고 이렇듯 몸을 비틀거리며 걸은 건 아니었습니다.

예전엔 두 발로 동네 마당을 온통 뛰어 다니며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씩씩하게 밥을 먹던 튼튼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런 한글이가 이렇듯 비틀거리며 걷게 된 건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 된 게 아닙니다.

거센 숨을 고르며 잠시 서서 쉬는 한글이의 눈매는 그 때 일을 돌이키느라 살짝 초점이 흐려집니다.
“휴 그 때 내가 그 집에만 놀러 가지 않았어도…” 땀을 닦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한글이의 얼굴엔 후회하는 빛이 가득합니다.

몇 달 전 한글이의 옆 집엔 식구들 많은 중국이네가 이사왔습니다.
한 집 건너에 살다가 식구가 많아지니 한글이의 사촌 여진이네가 살던 사잇집을 사들여 집을 넓힌 겁니다.  첫날부터 식구가 많아 떠들썩하게 떠들며 울타리를 들여 쌓으려고 해서 한글이네가 물러가게 한 일도 있습니다.

한글이는 궁금해서 이웃 중국이네를 놀러 갔습니다.
식구가 많고 살림이 많아 처음 보는 물건도 많아서 기웃기웃하자 사람 좋아 보이는 중국이네 엄마가 들어와 중국이와 놀아라고 합니다. 중국이는 양쪽에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다리가 아픈 중국이는 걷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아빠가 바퀴 달린 의자를 만들어 줘 바퀴를 굴리며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탓에 중국이는 살이 많이 찐 아이였습니다. 뒷집 본이네는 길을 돌아 가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고 본이는 아직 아장아장 기는 아기였기에 같이 놀기엔 맞지 않아 한글이는 적잖이 심심했던 차에 잘됐다고 중국이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장난감도 많은 중국이네는 참 좋은 집인 것 같아 한글이는 만날 중국이네에 놀러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중국이가 어릴적 타던 바퀴의자에 앉아 본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앉아서 손으로 바퀴를 굴려 보니 참 신기하게도 걷지 않고도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움직입니다.
와! 괜찮은 걸! 두발로 힘들게 걷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하여 가끔은 걷지 않고 어딜 다니고 싶기도 합니다.

한글이는 “나도 이거 타고 다니면 좋겠는데…” 하고 혼자말을 했습니다. 중국이는 “그래 난 살이쪄서 더 못타니 너 가져”하고 한글이에게 바퀴의자를 줬습니다. 한글이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와 내게도 바퀴 의자가 생겼다!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날부터 한글이는 중국이와 같이 바퀴의자를 타고 놀았습니다. 앞으로 뒤로 빙글빙글 돌고… 둘은 신나게 몇 달을 같이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엔 영국이도 이사오고 미국이도 이사오고 멀리 살던 많은 화란이, 독일이도 놀러 왔습니다.

그 애들은 첨보는 놀이도 하고 신나게 어울렸습니다. 어느새 자란 본이는 예쁜 소녀가 되어 그 애들과 잘 뛰어 놀았습니다. 대문 밖만 바라보던 한글이와 중국이는 이제 같이 놀고 싶었지만 다리 아픈 중국이 땜에 맘껏 어울리긴 망설여 졌습니다.

자꾸 날은 지나가고 좀이 쑤신 한글이는 더 못 참고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다리가 휘청하며 몸을 못 가눕니다.

"어? 어? 왜 이러지?" 한글이는 문을 나서다가 털썩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하늘이 노랗습니다.
어안이 벙벙하여 한참을 앉아서 생각해 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까닭을 알아냈습니다. 그 동안 너무 바퀴의자에만 앉아 있어 다리에 힘이 없어진 것입니다.

한글이는 그제사 지난날을 후회했습니다. 아! 내가 왜 그랬지?
그래 지금부터라도 다시 일어서는 거야. 한글이는 땅을 짚고 천천히 일어 서서 벽을 기대어 걸어 봤습니다. 저놈의 바퀴 의자는 나를 망친 흉물이라 다시는 쳐다 보기도 싫습니다

이런 한글이를 보고 삼촌은 안쓰러워 하며 어차피 이리 된 것 혼자 못 걸을테니 계속 바퀴 의자를 쓰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글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원래는 잘 걸었던 나야! 그래 좀만 힘을 기르면 예전처럼 힘차게 걷고 뛰놀 수 있을 거야. 나도 쟤들처럼 달리고 뛰고 싶어. 새로운 놀이 마당에 같이 나가고 싶어.

다시 힘차게 걷기 위해 한글이는 오늘도 있는 힘을 다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흐르는 땀 따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거친 숨소리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키던 생각을 멈추고 다시 힘차게 발을 내딛습니다. 어디선가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 보니 이런 한글이를 말없이 바라 보며 힘내라고 웃음짓는 엄마 아빠가 주먹을 쥐며 한글이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