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의 신고(辛苦)
강만수의 신고(辛苦)
  • 국토일보
  • 승인 2008.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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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칼럼] 본보 편집인

 

  세상일은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전 날까지만 해도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증시가 하루 만에 사상 유례없는 폭등세로 돌아서는가 하면 리더십 부재라는 비난 속에 능력 미달자란 수모까지 가해지면서 곧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견되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지와 위상 역시 하루아침에 돌변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이른바 한· 미 통화스와프 협정의 위력이 제공인자(因子)로 클로즈업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들면 아직 실물과 연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가히 폭발적인 호재로 시장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눈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너무 분위기에만 휩쓸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기도 하다. ‘경제는 심리’라고도 하지만 실체와 연계되지 않는 심리만의 변수는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냄비 경제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경험한바 있다.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어버리는 악폐가 몰고 온 부작용과 후유증을 그래서 분명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작금의 시장 분위기나 경제 행태에서 여전히 냄비성 경제의 적폐를 목도하고 실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다는 말처럼 모처럼 살아난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장관 취임 이래 늘 딱딱하고 상기된 표정만 지었던 강만수 경제 수장(首長)마저 모처럼 밝은 미소를 지은 터이고 보면 가급적 긍정적인 기류를 증폭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과연 우리 특유의 냄비경제를 배태시킨 일희일비(一喜一悲)성 국민성이 언제 또다시 표변하여 요동을 칠 것인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조급한 국민성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경제 압축성장의 원동력이 곧 이런 국민성 때문임은 분명 자랑할 일이다.


 다만 이런 조급성에 더해 '나를 탓하기보다 남을 더 탓하는‘ 나쁜 습관까지 새롭게 기승을 부리면서 오히려 우리의 경제역량 나아가 국가적 역량까지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경제의 침체 현상은 이제 초입일 뿐이다. 얼마나 거친 풍파가 몰아칠지 아무도 예단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고 혼미스런 국면이다. 때문에 전례 없는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함께 뭉쳐 힘을 보태야 하는 게 상식이다. 조급해 하고 남 탓만을 하다가는 그야말로 격랑에 침몰하고 말 뿐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남의 탓만을 하다가 온통 나라가 갈기갈기 찢겨나간 아픔을 겪지 않았는가. 세계화 시대가 곧 국경의 붕괴를 의미하는 마당에 좁은 국토 안에서 이념으로 싸우고 빈부로 갈리고 지역으로 대립하는, 그래서 경제마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진솔한 충고나 조언보다는 헐뜯고 흔들어 보려는 저의가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경제가 어려울 때 마다 궁지에 몰리면서 갖은 수모를 겪어 온 강 장관만 하더라도 우리가 한발 물러서 측은지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광스럽기 보다는 안쓰러운 인물일 수 있다. 나라경제가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든 상황에서 경제장관의 리더로 등장했다는 것은 냉정히 따져보면 한국경제 회생의 인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질이란 적진에 볼모로 잡혀 있는 사람이다.  적진에서 탈출한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울 수 있겠는가. 몇 십 배의 노력과 지혜를 동원하지 않고는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경제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약속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수장이고 보니 실망과 비난의 강도마저 더 크게 받아야하는 2중의 멍에까지 지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그때그때의 ‘큰 흐름의 노예’라는 공통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연 얼마나 진솔하게 역량을 투입하고 아울러 경제주체들의 응집력을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게 관건일 뿐이다.


 모처럼 강 장관에게도 힘을 보태는 분위기가 일기에 그의 투사적이고 진솔한 역량을 다시금 배가시켜 보고픈 심정이기도 하다.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학습효과는 이제 가히 독보적수준이라고 해도 이미 과언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아직도 경제 관료들 사이에선 그의 역량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거의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일 뿐 아니라 경제 관료로서의 능력과 경험에도 손색이 없는 탓이다.


 다만 그에게 약점이라면 정치 감각이 곧잘 회자된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그의 확고한 소신과 믿음 때문임을 감지하고 있다. 그는 관료생활을 통해 단 한 번도 정치권의 힘을 빌리지 않았음을 자부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소신은 변치 않을 것임을 다짐하곤 한다.


 서기관이었을 당시 그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인생 행로에 유일한 빽은 하나님”이라고. 그래서 고집스런 소신과 언행이 싹텄는지도 모른다. 부디 이제는 본인과 우리 경제가 겪은 쓴맛을 단맛으로 돌려주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