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의 역설
카리스마의 역설
  • 국토일보
  • 승인 2008.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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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칼럼] 본보 편집인

  이명박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역시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특히 세계적 금융쇼크까지 덮치면서 그 절실함은 실로 언급을 삼가 하게 할 정도로 화급해 졌다.

 

물론 좌파 정권 10년의 병폐를 척결하는 일도 중요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 잡는 것도 꼭 해야 할 일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면 이제는 국가적 안위의 문제를 논해야 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병폐 척결이나 기강 확립은 후순위로 밀려도 나무랄 게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이 어떤 지경에 와 있는지는 금융공황이라는 세계적 대란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가 그 심각성을 여실히 실감하고 목도했다. 망연자실하게도 경제의 핏줄이라는 우리의 금융 메커니즘은 풍전등화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번 풍파에서 각인시키고도 남았다.

 

증권시장은 뿌리째 흔들려 파국과 공황의 국면까지 연출했고, 그 여파가 실물 쪽으로 옮기면서 물가 속등과 수출 부진에 의한 경상수지 적자기조 촉발 등 한 순간 국가경제의 붕괴를 야기시킬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여기에다 세계적 금융 대란은 국가간, 블록간의 제휴 및 협력 체제의 재편이라는 이른바 경제체제 변화의 대변혁까지 가시화하면서 우리를 압박,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박힌 꼴이다.


 흡사 세계가 질풍과 노도의 시대를 맞고 있는 느낌일 만큼 경제 상황은 급박하게 요동치는 형국이다. 이렇다보니 위기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해법까지 보이지 않다보니 요즘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온통 경제 불안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이나 모두 불만과 불안에 싸여 있다. 특히 국민 경제의 중심축인 중산층의 불안 심리는 위험 수위를 넘어 폭발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요즘의 경제 상황을 가리켜 전국민 불만의 시대라고 경고하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가계 부채의 급증과 이에 반한 가계 소득의 감소 현상이 전국민 불만 시대의 휘발성 인자(因子)로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경제 상황 전반을 심각하게 재점검, 현실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야말로 국력을 응집시킬 수 있는 현실 진단과 시의성 있는 대안 및 처방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믿음이 가고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화급을 요하는 상황에서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 900개 세부실천과제 같은 중장기적이고 잡화점식 정책을 듣고 싶어 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대통령 라디오 연설도 지금의 국민 정서로는 한가롭게 들리는 불신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지금은 피부에 와 닿는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와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어필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적 리더십에 큰 희망을 걸었다. 이 대통령의 현대건설 신화, 청계천의 추진력 등은 시대가 요구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기대하기에 손색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기실 대통령이 된 이후 그의 통치력이나 리더십, 더 나아가 언행은 기대보다 실망감을 더 크게 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런 탓인지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에게서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자체에 이제는 고개를 젓는 불신까지 표출한다. 워낙 카리스마적 기대가 컸던 탓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경제 주체들 사이에서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국가적 리더십의 취약 내지 부재의 탓으로 돌리는 여론이 팽배하다. 역설적일지 모르나 지금의 상황에선 오히려 위기를 타개해 나갈 지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그가 그동안 보여준 역설적인 카리스마 면모에 실망한 탓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그가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카리스마였다면 대통령이 된 이후 그런 체취는 온데 간데 없고 오히려 유약한 역(逆)카리스마적 풍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 흔히 카리스마는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능력이라고 믿는 게 대부분이다. 남들이 갖지 못한 천부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카리스마라고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카리스마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에겐 카리스마적 능력을 발휘할 소양이 있다고 보는 게 옳을 듯싶기도 하다. 다만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이 점점 쉬워지고 심지어 일상적인 일로까지 변모된 상황에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카리스마나 리더십의 입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 이에 순응하려는 과정에서 유약한 면모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어떤 힘을 느끼고 따르도록 하는 ‘역설적 카리스마’를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도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 역설적 카리스마를 시도하고 있는지 새롭게  조명해 보는 안목과 기대감을 가질 만 하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