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
손전화도 할 수 없는 당신
보고파도 기별 못한 비애
얼마를 더 기다려야
사랑하는 만남 이루어지나.
하늘에 어우러진 구름처럼 껴안고
우렁우렁 소리 지르다
왈칵 울어 버리면 풀릴 것을.
헤어져 환갑 된 날까지
은빛 머리칼 날리며
가슴에 스멀거린 한
속으로 삭인 노래
매양 부르고 누워 있다. - 시 백두산 천지에서 전문 -
백두산 영봉, 거기엔 겨레를 일으켜 세우는 정기가 있다. 우리들 마음을 끌어당기는 천지의 푸른 물은 칠천 만 동포의 분발을 채근하며 신비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애국가 첫 절을 배울 때부터 백두산을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에게 백두산과 만날 약속을 했는지 모른다. 꼭 한번 가보겠다고 다짐한 겨레의 영산 백두산에 환경기술사회 등산회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친화력 두텁기로 소문난 환경기술사회는 가족과 함께 백두산 등정에 짜릿한 보람을 안고 돌아와 가을엔 금강산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서울엔 드샌 더위로 숨 막힐 지경인데 백두산은 시원한 바람이 모자를 날릴 만큼 불어 댔다. 우리 일행은 여성 안내원의 제의로 꼭대기에서 만주 쪽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애국가 합창을 했다. 한이 될 뻔한 그리움이 노래로 표출돼 바람에 얹혀 날아갔다. 해란강변에선 일송정을 바라보며 가곡 선구자를 불렀다. 민족에 대한 사랑을 깨워 준 노래를 현장에서 부르자 가난 속에 독립을 위해 쫓기고 쫓긴 선열들 모습이 영상처럼 머리를 스치며 넘어간다.
지금은 중국 땅으로 분류된 백두산 아래 연변은 뜻밖에도 세종대왕의 혼이 살아 있다. 한글은 모든 간판의 윗자리에 의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대왕님과 율곡, 퇴계선생의 초상화가 그려진 화폐가 자유로운 통행을 하고 있다. 한국티브이 방송이 위성 안테나를 타고 실시간으로 파고든다.
“미국의 지배아래 신음한 곳으로 배웠으나 이젠 한국을 떳떳한 조국으로 받아들인다. 중국보다 앞선 조국이 있기에 중국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동포 안내원의 이야기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88올림픽이 동포들 가슴에 자긍심을 일으켰고 한국의 번영에 눈을 번쩍 떴다고 했다. 요즈음엔 가정을 소재로 한 일일연속극이 동포들을 흠뻑 빠져들게 해 방영 시간이 되면 하던 일손도 놓고 시청하며 즐긴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에 대한 동경을 더 깊게 한다고 했다. 예술과 문환ㄴ 나라의 격을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외교관 역할을 한다.
만주의 한 쪽인 연변의 상황은 우리에게 작은 위안이다. 통일만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경제권데 들어 공존공영 터전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느린 걸음이다. 두만강 변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면 적막강산이다. 푸른 물도 뱃사공도 떠난 두만강 낮은 물은 목숨 걸고 탈북을 도모하는 동포의 실날같은 희망이란다.
큰 글씨로 써서 세워 논 영웅주의의 선전판과 너스레가 답답하다. 압록강에서 탄 유람선은 강 중심을 넘어 북한 쪽 가까이 접근한 뒤 돌아온다. 두만강과 압록강은 모두 백두산에서 흐르므로 백두산의 연장선상에 있다.
압록강 변 중국의 단동엔 하늘을 찌르며 솟구치는 빌딩이 급속한 발전을 자랑하는데 강 건너 신의주는 깊은 잠에 빠져 불구경도 못하는 모양이다. 저렇게 울타리를 높이고 못사는 길을 꿋꿋이 가고 있음은 갑갑하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도 그 아류인 동구라파와 중국도 폐기해 버린 옷을 ‘주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뭉그적거린다. 점점 약효가 떨어진 ‘자존’민 내세우면 어쩌자는 걸까. 주고받고 밀리고 업어치기하며 사는 게 삶인 것을, 언제까지 콧대만 세우고 해결되지 않는 과제 앞에 목청만 높이려는 걸까.
백두산에 오르고 거기서 흘러나온 두만강과 압록강을 중국 쪽에서 둘러보니 안타깝다. 밟고 돌아본 산야가 오랫동안 우리 땅이었다. 임승국 선생이 번역한 ‘한단고기’에 의하면 만주 뿐만아니라 화북전역이 고조선의 영토였다. 역사를 생각하면 육십년 가까이 갈라진 남북이 처연하다.
21세기 개명 천지에 북한은 외로운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해고도, 외로운 섬에서 살고 있는 북한 동포가 애처롭다. 백두산 등정의 작은 소망을 이룬 기쁨 틈새로 파고드는 서글픔을 떨칠 수 없다. 우리가 북한을 귀찮은 짐이라 생각 말고 평화의 가슴으로 보듬어야 한다. 북쪽의 깊은 잠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
광개토대왕의 호령소리 들리는 만주벌판을 둘러본 감회는 많다. 이제는 땅의 영토가 아닌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영토를 넓히는 광개토대왕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탠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다음엔 자동차를 몰고 육로로 내달려 천지의 푸른 물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