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산문 <92>
詩와 산문 <92>
  • 국토일보
  • 승인 2013.03.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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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봉현(前 한국기술사회 사무총장)님의 산문집 ‘대통령 과학기술 대통령님’을 연재합니다

떠돌이 별 속의 공동체

마음을 끄집어 하늘로 떠나 보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세계를 둘러보자. 별의 아름다움에 취해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게 하는 저 별들, 저 환상의 나라 우주. 은하 속의 별이 일천억 개, 사람의 뇌 세포도 일천억 개라니 사람을 일컬어 ‘소우주(小宇宙)’라고 한 말이 단순한 관념론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별과의 거리가 빛의 속도로 거리 단위를 헤아릴 만큼 멀고, 별에 따라선 몇 백 광년씩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이 무한대의 하늘은 첨단과학으로도 벗겨지지 않는 신비의 너울을 쓰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의 무한의 시공간(時空間)에 태어나서 팔십년 정도의 시간,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얹혀살다 가니 ‘미물’이라는 표현은 사람을 폄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은 생명체는 일천억 개의 뇌 세포로 사유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문명을 일으키면서 살아가는 당찬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생명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경지다.

떠돌이 별, 지구 속의 우리는 더불어 싸움질도 하고 화평하며 발전하는 역사 속에 모여 동아리를 이루고 있다. 생각할수록 우주의 한 점인 지구는 감탄이요 즐거움이요 아름다움이요 행복이요 사랑의 광장인 것이다. 하지만 쉽게 폐허가 될 수 있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광장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갑신년의 끄트머리 즈음에 인도네시아 앞 바다 밑에서 토해 낸 트림으로 인도양 해변 여러 나라에서 죽은 형제들이 엄청나다. 발표된 숫자로 이십오만 명에 이르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안긴 지진, 땅 속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까. 무엇이 어떤 일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지구는 이따금 벌컥벌컥 붉은 피를 뱉어내며 스스로 열병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 머나먼 하늘나라 태양을 일 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뒹구는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면 인류는 전멸하게 된다니 정교한 운행이 놀랍다. 핵폭탄이나 어떤 살상무기보다도 위력을 지닌 자연의 율동과 힘 앞에 숙연할 뿐이다.

지구는 수많은 생명을 보듬어 키우는 사랑덩어리다. 편차없이 균형으로 동식물이 함께 살도록 조화와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모습에 외경(畏敬)심을 갖게 한다. 선남선녀들은 잘난 체 뻐길 일도 아니요 못난 체 기죽을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과 더불어 평상심으로 살아가면서 도리를 따라 선(善)을 추구하면 그것이 진보 아니겠는가.

성인(聖人)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본바탕과 생활 속에 나타난 모습을 꿰뚫어 보고 찾아낸 ‘사랑 혹은 자비로움 또는 인(仁)’은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이 걸맞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나침반이다. 지구안의 사람은 모두 형제라는 깊은 자각의 꼭짓점에서 출발한 지혜요 복음인 것이다.

오늘처럼 생존경쟁이 질펀한 시장경제체제에서 잘살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인 ‘노력’이나 ‘도전’을 통한 이윤추구는 발전의 동인(動因)이긴 하다. 그러나 과다하게 펼쳐지는 이문 챙기기와 남을 배려함 없이 내달리는 욕망의 파도는 적절히 절제되고 정제돼야 한다.

우리는 넉넉한 돈을 지니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원한다. 그런 터전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재난을 넘어설 만큼 나아가진 못했다.

이번 지진처럼 언제 땅의 뒤틀림으로 아수라장이 될 지 알 수 없다. 언제 하늘의 눈물로 물바다를 이룰지 모른다. 혹은 우주 속 어느 별이 지구와 부딪쳐 박살날지 모르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공간은 불안정을 품고 있기도 하다.

저 무한대의 우주 속에 한 점 떠돌이별안의 인류, 우리는 지구라는 칸막이 틀 안에 매여 사는 공동체다. ‘생명존엄’은 우리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화두로 삼아야 할 명제이다. 함부로 다루는 저 무생물까지도 생명과 연결고리가 있다.

생명에 역행하는 전쟁이나 테러 폭력, 사사로운 감정으로 함부로 죽이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생의 모독 앞에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지구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 우리 공동체는 일상에 쫓겨 서두르다가도 천천히 흐르는 물 같은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삶의 의미를 채근하며 복되게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