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산문 <91>
詩와 산문 <91>
  • 국토일보
  • 승인 2013.03.0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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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봉현(前 한국기술사회 사무총장)님의 산문집 ‘대통령 과학기술 대통령님’을 연재합니다

이륙 십이(2×6=12)

새나 거미도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걸까. 매 새끼가 자라 하늘을 날다가 쏜살같이 내리 꽂히며 먹이를 낚아챈다. 고도의 노하우다.

거미는 허공에 정교한 그물을 치고 나비, 잠자리, 매미 따위가 걸리면 잽싸게 칭칭 감아 옭아맨다. 높은 나뭇가지에 집짓는 까치의 대물림 건축시공기법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물들도 먹거리와 살 곳을 해결하며 생식을 통해 자손을 이어가는 것을 관찰하면 신비롭다.

저들도 끼리끼리 몸짓과 언어로 일정한 과정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지는 걸까? 여섯 살 난 해 봄 마을 서당생활 생각난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배려였는지 개구쟁이 짓 겨워 보낸 건지 알 수 없다.

스무 명 남짓한 동창 중엔 결혼한 어른도 있었다. 가장 아래 꼬맹이는 길평, 봉석, 나 세명. 매일 한문책 사자소학(四字小學) 열여섯 자씩 배워 익힌다. 저녁때면 흰 수염 허리 굽은 훈장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외운 뒤 집에 간다. 기나긴 봄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흔들며 왼 종일 소리 내어 읽고 외우는 열여섯 자.

헌데 하루는 다 외지를 못했다. 꼭 한 번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끌려 놀았는지 가랑비 마시고 파릇파릇 자란 보드란 찔레 따먹고 또래들과 놀이에 빠졌는지 외우는데 실패. 대뿌리매 든 훈장님께서 바지 걷으라신다. 때리고 또 때리고… ‘왜 많이 때리시냐’며 울먹일 때 “이륙 십이 열 두 대가 맞지 않느냐?”시며 눈을 크게 뜨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배우면서 한 글자 틀린데 매 두 대, 그 때 여섯 자 틀렸음 되새겼다. 훈장님 돌아가신 먼먼 뒷날에야 사랑의 매로 정립된 대뿌리매.

푸른 하늘 쳐다보며 생각에 잠길 재면 흰 수염 굽은 허리 평화로운 얼굴의 훈장님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청운의 꿈 난무하는 서울 하늘, 교육 흥국론에서 망국론까지 출렁이는 곳. ‘내 자식만은’ 다짐하며 일류 향해 종종걸음 치는 한강 엄마들의 간절하고 아름다운 교육 열풍, 아이들은 늦은 밤까지 과외에 매달린다. 더러는 삐뚤림도 있는 어린 시절, 훈장님의 사랑의 매 보탰으면….

세월의 강은 쉴 새 없이 돌기와 웅덩이 지나며 아이를 청년으로 청년을 늙음으로 나르는데, 떠내려가다 문득 눈 돌리니 서당 뜰 거닐던 바람 줄기, 한 움큼의 햇살 다가선다.

서울까지 따라와 외로움도 지칠 줄도 모르고 풀잎 어루만지는 바람과 햇살, 내 창문 여는 소리에 반가워한다. 고향 서당도 헐리고 나도 변했는데 내 마음 중심 흔들리거나 게으름 짓누를 때면 흰 수염 대뿌리매 들고 “이륙 십이 아니냐.”며 눈 부릅뜨시고 다가선 훈장 모습, 귀한 생명 키우는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은 그대로다.

어머님은 이따금 할머니 얘기를 하셨다. 좀 속상한 뉘앙스가 풍기는 말씀이셨다. 한글을 배워 문장을 구사하신 할머니는 당시론 앞선 여성이셨다. 그래서 우리 집은 어머님 또래 마을 아가씨들 글방이 됐다.
어머님으로선 시집살이에 짐이었을 터, 그래도 꾹꾹 참고 청소며 간식이며 뒤치다꺼리를 하셨다한다. 덕부에 마을 처녀들은 한글을 깨우치고 시집가서 밝아 온 문명시대에 신여성으로 자부하며 생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학교에 가기 전 어렸을 때 할머니가 붓으로 쓰신 책을 봤다. 끈으로 묶은 두꺼운 책이었는데 분실된 것이 안타깝다. 기억에 나지 않은 할머니 얼굴 대신 자랑스러운 정신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까치집과 거미줄을 보며 새삼 교육을 떠올렸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대를 이어가는데 본능적인 전수 교육은 있는가 싶다. 그러나 교과과정에 의한 체계적인 교육은 문명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그것은 인적자원의 질을 한껏 높이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한다.
교육에 관한 논란도 많고 문제제기도 많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국가발전을 교육이 끌고 간다. 어린 날엔 잘잘 못을 가리지 못했다. 이때 적정한 사랑의 매는 교육의 방편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최근에 매를 때리면 폭력교사로 몰려 곤혹을 치른다. 내게 있어 고등학교까지 선생님으로부터 몇 차례 맞은 매와 꾸중은 오래 기억되며 삶에 순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처음 맞은 서당 훈장님의 매는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채찍하신 고마운 매로 살아났다. 그 훈장님이 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임을 훨씬 뒷날에 알고는 더욱 감사하며 살았다.

매는 나의 나아감에 보탬이 됐고 자만을 잘라 냈으며 노력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그러나 격한 감정에 사랑이 매몰된 매는 폭력으로 바뀔 위험이 있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