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산문 <89>
詩와 산문 <89>
  • 국토일보
  • 승인 2013.02.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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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봉현(前 한국기술사회 사무총장)님의 산문집 ‘대통령 과학기술 대통령님’을 연재합니다

불씨 살려낸 소리박물관장

추운 겨울날이면 무쇠 화로에 불을 담아 방안에 들여 놓는다. 화로 불은 허름한 시골집의 시원찮은 난방을 보충하고 다용도로 활용된다. 밖에서 찬바람 맞으며 연날리기나 자치기 놀이를 하다가 손을 녹이기도 하고, 밤을 구워 먹기도 한 화로는 긴 담뱃대를 물로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에겐 더욱 소중한 필수품이었다.

어머니가 바느질로 손수 만든 옷이나, 예쁜 실로 한 땀 한 땀 꽃 수를 놓은 누님은 화로불 속에 인두를 집어넣었다가 적당히 열을 받았을 때 끄집어내어 동전 부위나 우그러진 수를 문지르면 반듯 해진다.

이처럼 다용도로 사용되던 화롯불도 한나절 지나면 불씨만 남고 거의 사그라진다. 누님은 불씨만 남은 화로를 부엌으로 가져가 살려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점심이나 저녁거리를 지었다.

이제는 ‘불씨를 살려라’는 격문 같은 용어만 남아 향수를 자아낼 뿐 시골에도 무쇠화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큼 발전했다. 변화 내용도 고려와 조선조흘 합한 천년의 변화보다 더 변했다. 디지털 시대에서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아득한 느낌이다.

지난 세밑, 경포 겨울 바다를 보러 간 길에 무쇠화로 속에서 살려낸 불씨를 보았다. 꿈의 불씨를 살려 환하게 밝히며 훨훨 타고 있었다. 손성목 관장님이 세운 소리박물관은 꿈의 불씨를 살려낸 무쇠화로였다. 그것은 통쾌함까지 안겨 준 고맙고 따스함이었다.

정부에서 챙겨 할 일을 개인이 끈질지게 살려낸 찬란한 불씨였다. 번쩍거리는 요즘 건물에 비하면 전시관은 초라하지만 진열된 전시품들은 실로 귀하고 방대했다.

만나 보지 못했지만 손성목 관장에게 외경심을 갖게 했다. 삼십여 년에 걸쳐 십육개 나라에서 수집한 사천여 점의 악기 중엔 백년 넘은 제품도 많다. 주인과 함께 들었다는 ‘무도회의 권유’라는 음악을 들으며, 죽은 주인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 있는 니퍼라는 개의 애처로운 모습의 그림은 주인을 살려내고 대신 죽은 오수의 충견을 연상시킨다.

에디슨 발명품이면 지구 어느 곳이든 찾아가 사재를 털어 사들인 물건들이다. 전시품 중엔 ‘세계 제일의 자랑거리며, 미국에도 없는 에디슨의 오리지널 발명품’이라는 유치과학자 제1호인 조경철 박사의 짧은 추천사 속에 함축돼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했던가. 손성목 관장은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나 1948년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축음기 한 대를 선물로 받은 것을 계기로 꿈을 갖게 됐다 한다.

6.25가 터져 혼란 속에 피란 올 때에 짊어지고 내려 왔다는 일본제 콜롬비아 G241 축음기.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쟁 속에 어른들이 “무거우니 놓고 오라”는 것을 고집스럽게 가지고 내려 온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손성목 소년. 이제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는 훌륭한 소리박물관, 에디슨박물관 관장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꿈이란 놀라움을 이루고 기적을 만들어 낸다. 소년의 심금을 흔들던 축음기 소리는 손성목 관장 가슴에 불씨로 남아 긴 세월 지구촌을 누비며 불씨를 살려내 훨훨 타오른 것이다.

손성목 관장이 살려낸 꿈의 불씨는 강릉시 송정동을 찾는 길손들 체온을 따스하게 감싸고 우리사회에 밝은 광채를 쏟아 내고 있다.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꿈의 불씨 살리기 모음현장은 밝고 옛날 무쇠화로처럼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