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형제의 난
[茶 한잔의 여유] 형제의 난
  • 국토일보
  • 승인 2013.02.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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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형제의 난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과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을 놓고 이맹희(82)씨 등 형제들과 벌인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인 이맹희씨의 일부 청구에 대해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지났다며 각하했고, 나머지 청구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하여 사실상 이건희 회장이 형제 간의 싸움에서 완승했단다.

원고의 청구금액이 모두 4조840억여원으로 이 소송가액은 역대 최고 규모로 인지대만도 127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4조원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도 않지만 그 돈을 놓고 형제 간에, 그리고 여타 후손들까지 단단히 한판 붙은 형상이다.

본 재판은 선대회장이 장남인 이맹희씨에게 그룹을 물려주지 않고, 차남인 이건희 씨에게 그룹 운영권을 맏기며 시작된 걸로 동생은 그룹의 운영을 매우 잘해서 삼성그룹을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했음을 볼 때 선대회장의 판단을 옳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서 형은 힘들고 답답한 평생을 지내 왔을테지만 속담에 ‘있는 X이 더 한다’는 말처럼 돈 없는 세인들은 그들의 다툼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심 판결을 맏은 서 판사는 ‘보통 사람의 가치관을 가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재판부 입장에서 이 사건의 진실여부와 결과를 떠나 원고와 피고 측 일가가 모두 화합해서 함께 하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는데, 판사의 바램대로 이들이 화해를 할지 항소를 할지는 지켜봐야 할성 싶다. 하긴 이들 뿐 아니라 형제 간의 싸움은 역사적으로도 늘 있어 왔다.

얼마 전 박용오 전 두산그룹회장이 성북동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었다.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둘째 아들인 그는 그룹회장을 셋째에게 물려 주라던 형의 말을 듣지 않고 반발해 그룹의 비리를 검찰에 진정하면서 수사가 벌어져 형제와 그룹으로부터 제명되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생활을 해왔었고, 세인들은 이 사건을 ‘형제의 난’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국 형제들 간의 다툼으로 인해 두산그룹은 큰 어려움을 겪었고, 본인은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채 중견건설회사인 성지건설을 인수해 운영해 왔지만 실패하고, 부인이 먼저 죽어 혼자 지내던 그는 아들까지 증권관리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게 되자 결국 비극적 죽음을 선택한 듯하다. 그의 부음을 접한 맏형은 모든 형제들이 힘을 합쳐 장례를 정성껏 치러 주라고 했으니 그나마 그의 죽음을 통해 형제들이 다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니 불행 중 다행인 듯 싶다.

그 전에 금호그룹에서도 박삼구, 박찬구회장 간에도 비슷한 형제의 난이 벌어졌는데, 이는 비록 삼성이나 두산, 금호그룹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한진, 현대, 현대차, 한화, 롯데 등도 비슷한 난리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고 언제 어떤 그룹에서 재연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 역사에도 조선 초 태종 방원 때 방식과 방간을 처참하게 죽인 왕자의 난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류사적으로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편에 보면 동생인 아벨을 죽인 카인이 야훼의 노여움을 사서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되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돼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형인 에사우로부터 장자 상속권을 빼앗고 늙은 아버지로부터 형을 대신해 축복까지 받게 된다.

역사의 윤회라고나 할까, 나중에 야곱은 12 아들을 두게 되는데 가장 사랑하는 늦둥이 아들인 요셉을 편애하면서 나머지 아들들이 시기를 해 요셉은 노예 상에게 팔려 가게 된다.

중국의 경우에도 역사를 단편한 ‘삼국지연의’에 보면 위나라의 왕인 조조는 아들 중 문재(文材)가 뛰어난 조식을 총애하게 되는데 큰 아들인 조비가 이를 시기하고, 혹시라도 동생에게 왕권이 넘어갈까 해 조식을 죽이고자 변방에 있는 그를 불러 그 유명한 ‘칠보시’를 짓도록 한다.

‘네가 시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이 자리에서 시를 지어라, 만일 짓지 못하면 거짓소문을 낸 죄를 물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라며 일곱 걸음을 걸을 때까지 ‘형제’ 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채 형제의 정을 담은 시를 짓게 하였고,

煮豆燃豆其 (자두연두기)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어쩌 이리 급하게 볶아대는가
   - 조 식-

‘콩을 까서 솥에 넣고 불을 때니 솥 안의 콩은 뜨거워서 울고, 불쏘시개인 콩깍지는 불에 타서 운다. 본래 한 뿌리인데 어찌하여 서로 갈라져 볶아대느라 뜨거워 우는가.’ - 눈물로 쓴 이 시를 읽은 조비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조식을 놓아주게 된다.

먹을 것과 권력을 두고 다투는 형제간 싸움을 보면서, 어느 날 큰불이 나서 집이 타는 걸 본 거지부자의 대화에서 “아버지, 우린 집이 없어 불이 날 염려가 없네요.”라고 하자 그 거지 아버진 “그래, 그게 다 아비 덕인 줄 알아라.”라고 했다던데, 싸우고 욕심 낼 재산이 없는 것이 차마 위안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도덕책이었는지, 동생은 식구가 많은 형을 위해, 형은 새로 살림을 나는 아우를 위해 상대의 볏가리로 밤에 볏짚을 서로 나르다 달빛에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 안고 울음을 터트린 형제의 정이나, 우연히 주운 금덩어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에 욕심이 이는 것을 알고 함께 그 금덩어리를 바닷 속에 버린 형제의 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백구(흰 갈매기)야, 훨훨 날지를 마라/ 너 잡을 나 아니란다. 성상이 나를 버려 너를 찾아 여기 왔단다./ 강상에 집을 짓고 나물 먹고 물마시며/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하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조선시대 어느 귀양객, 바닷가에 유배된 그가 쓴 이 시가 새삼스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