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산문 <88>
詩와 산문 <88>
  • 국토일보
  • 승인 2013.02.0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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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봉현(前 한국기술사회 사무총장)님의 산문집 ‘대통령 과학기술 대통령님’을 연재합니다

편 지

김 형,
자네 아들이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 듣고 참으로 장하다며 칭찬하고 싶었네.
얼마나 많은 독서와 실험, 심오한 탐구에 매진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네. 더러는 외로움이 시름으로 변해 괴롭기도 했을 것이네.

때로는 난관에 부딪쳐 절망하다가도 끝내는 자신과의 싸움에 이긴 아름다운 삶의 한 장을 장식한 게지.
꿋꿋한 의지와 인내의 결실은 찬 서리를 머리에 이고 피어있는 청초한 가을 국화를 연상케 하네.

공직 마감을 앞두고 모처럼 가뿐한 마음으로 파리-비엔나-워싱턴-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르는 여행길에 올랐네. 여행에 별다른 의미를 붙이긴 뭐하지만 20세기를 마감하는 해가 공교롭네.

이번 여행은 늦가을 자연이 펼쳐 놓은 빛의 잔치, 지구 북반부의 찬란한 가을 단풍을 만끽한 행복스런 시간이었네. 부러 열차를 이용한 파리-비엔나의 열두 시간은 더욱 좋았어. 하염없이 스치는 벌판과 나무와 짐승 그리고 파란 하늘은 아름다운 그림 같았어.

언덕 위의 하얀 집과 평화롭게 풀 뜯는 가축들을 보며 일찍이 과학기술에 바탕하여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유토피아가 부러움이었네.

흔히 “사람은 고익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데 공기에 대한 감사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지적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는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사는 야속한 측면이 있지.
나는 ‘자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선택할 길은 과학기술을 일으켜 세계일류가 돼야 한다.’는 것을 주문(呪文)처럼 외우는 그룹에 서서 살아왔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은 우리가 본받을 곳이었어.

산이 70%가 넘는 땅에 오밀조밀 오천 년 동안 농사에만 기대어 살아온 우리들이 겪은 궁핍은 필연이요 운명 아니었었나 싶네. 늦게나마 눈을 떠 남들이 칠십 년 혹은 백년 넘어 이룩한 산업화를 삽십여 년 만에 이룬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정말 뛰어나고 기적 인 게지. 정보화 사회 선두다툼을 하며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희망으로 덮인 땅으로 바뀌고 있어. 우리라고 축복받지 말라는 법은 없을 걸세.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계는 가까워졌고 모든 산업은 개방과 시장원리에 따라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구도 아래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식상해 하지 말게나. 이 화두를 푸는 열쇠는 과학기술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 믿고 있네.

연구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과학기술자를 우대하여 전력투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네. 지금은 활짝 핀 과학기술시대, 세계가 과학기술 선점의 전쟁 중이네. 과학기술전쟁에 이기려면 공이 큰 과학기술자들에게 상도 많이 줘 격려해야 하고 유공 과학기술자들이 작고한 뒤 편히 잠들 수 있는 국립묘지도 따로 조성해야 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삼십여 년 공직생활을 회상하면 오늘의 상황은 참으로 감개무량이고 우리시대가 역사상 대단히 큰 발자국을 찍고 있다고 믿고 있네. 하지만 역사는 반전을 거듭한 것 아니던가. 기어가다 뛰고 뛰다가 날고 날다가 내려앉는 반복인 게지.

최근 들어 우수 청소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 앞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네. 한때 청소년들의 가슴에 치솟던 과학입국의 꿈은 깨어지고 마는 것일까. ‘작으면서 잘살고 강한 나라 건설’을 힘차게 밀고 가야 할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기를 펴고 살아야 할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할 텐데….

공학박사가 된 자네 아들에 대해 ‘이젠 됐다’고 마음 놓지 말고 이어서 격려하고 지원해 주게. 확실하게 자리 잡아 연구에 전념할 때까지 밀어주어 큰 성과가 나도록 도와야 할 것이네.짙푸르던 숲이 고운 빛깔로 변하는 계절, 더러는 붉고 더러는 노란 색깔의 잎들. 한국이나 유럽이나 미국 동북쪽 산이나 모두 아름다운 잔치였어.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포효하는 자연의 외침을 들으며 삼십여 년 쌓인 피로를 씻어 내니 홀가분하네.

이제 남은 삶은 덤이라 생각하자 아름다운 가을단풍은 내게 보낸 편지로 읽혀지네.
사람도 마무리가 깔끔하고 예뻐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편지인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