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산문 <87>
詩와 산문 <87>
  • 국토일보
  • 승인 2013.01.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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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봉현(前 한국기술사회 사무총장)님의 산문집 ‘대통령 과학기술 대통령님’을 연재합니다

사람은 많은데

19세기를 뒤흔들고 지금도 여진이 남아 있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 용암처럼 흘러넘치는 그 열정 속에 사람은 강한 의지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아(초인)를 실현해야 한다는 채찍이 있다.
이에 대해 인권 신장과 민주화의 기둥으로 우리 시대의 마음과 정신을 지탱케 한 큰 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그렇다. 신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해 대신 죽었다”고 여유롭게 응수하시고는 각각의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을 닮은 생명체라며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라고 당부하신다.

옛날부터 사람이 사람을 바라본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산을 덮은 나무의 모습이 숲으로서는 하나같지만 나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의 생김새와 마음 씀씀이 그리고 행동 양태가 헤아일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근본이 착한데 자라는 과정에서 악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와는 정반대로 사람은 근본이 악하기 때문에 교육과 수양을 통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는 화를 내린다”는 노자의 강론을 반박이라도 하듯, 임금을 도와 신하로써 최선을 다하고도 궁형(성기를 없앤 형벌)에 처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사람이 복을 누리거나 화를 당하는 것을 선 또는 악을 행함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울먹였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종법사는 “모든 곳에 불상이 있다.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듯 하라”고 가르쳤다.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나 영화를 누리며 편히 지낼 수 있었지만 스스로 왕실을 뛰쳐나갔다. 고행을 거듭한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까지 꿰뚫어 보고 자비를 베풀어 구원하고자 애를 썼다.

지금도 수렁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기 어려워 고난 속을 헤매는 사람들은 많다. 장애가 심한 사람이나 의지할 곳 없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그들을 부추겨 세우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삶을 펼치는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 편에는 막가파식으로 귀한 삶을 불 솥에 내던지는 사람이 있다. 과학기술의 현란한 발전으로 생활이 편리해 지고 풍요로운데도 끔찍하리만큼 흉악한 사건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원조교제를 하면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아랑곳없이 사회지도층 인사라 할 만한 신분에 이른 사람들까지 그물에 걸리니 정말 궁상스럽다.

마약 절도 폭력 강도 난폭운전 등 사람을 해치는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종교천국인 나라, 세상의 모든 종파는 다 모여 가히 신앙으로 덮인 듯 왕성화 이 땅에서, 세계화로 다 드러내 놓고 사는 개방 천지에 도덕성과 신뢰는 경쟁력의 뿌리인데 낯 뜨거운 일이 왜 그리 많은가.

사회 속에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사릭 마련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다운 사람, 바른 마음을 지니고 행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대낮에 아테네의 번화가에서 등불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무엇을 잃어버리셨습니까?”고 문자 소크라테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뜻밖의 대답을 했다. “사람을 찾고 있다네.” “사람이라니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데 누구를 찾으십니까.” “그들은 사람이 아리라네. 사람은 많은데 사람다운 사람이 없네.”하며 한숨지었다고 한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하는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항상 추수르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 노릇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낮과 밤을 바꾸어 가며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 사람은 없다. 대자연 앞에 인간의 역량은 참으로 미미하다. 영원 가운데에 우리들의 생은 극히 짧게 아주 귀하게 머물다 간다. 이 비껴갈 수 없는 엄연한 상황과 운명, 한정된 삶 앞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짚어 보며 일요일 아침 예사롭게 앞산에 오른다.

물소리 매미소리 어우러진 오솔길, 사람을 보면 쏜살같이 내빼던 청설모가 도망은 커녕 앞발을 쳐들고 비비며 인사한다. 사람이 준 먹이를 반복해 먹더니 이제는 마음을 열고 친해진 것이다.
모름지기 베푸는 훈련을 조금씩이나마 쌓아 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