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잔의 여유] 지게
[茶 한잔의 여유] 지게
  • 국토일보
  • 승인 2012.10.0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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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 태 혜원까치종합건축 대표이사 /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

지게

지게는 무거운 짐을 옮길 때 등에 지고 사용하는 도구이다. 지게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물통 등을 매달아 물 등의 액체 류를 나르는 것이 있고(물지게), 또 하나는 나무나 다른 곡물, 꼴(풀) 등을 나르는 지게가 있다.

지게는 구조가 간단하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농사도구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고 산악지대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지게의 사용은 필수적이었다.

지게는 크게 세 부분의 구조로 돼 있는데 지게의 몸체, 필요에 따라 탈 부착이 가능한 바자기와, 지게를 세울 때 쓰는 작대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크거나 긴 물건을 실을 땐 지게 몸체를 그냥 쓰지만 곡식등 작은 물건으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을 땐 바자기를 지게에 얹어 사용한다.

바자기는 일종의 소쿠리 같은 역할을 하는데 평소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작대기는 지게를 세우는(받치는) 용도 외에도 때론 동네 총각들과 밤늦게 까지 놀다 들어오는 큰 딸을 두드리는데도 쓰였고(작대기 타작이라던가)…

멜빵으로 길이를 조정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게는 사용하는 사람의 키에 맞추어 주문 제작된다. 지게의 다리는 가능한 짧게 하여 다리가 끌리지 않아야 한다. 무거운 짐을 싣고 지게 다리가 땅에 닿는다면 바로 앞으로 고꾸라지기에…

보통 쌀 한가마(80㎏)를 지게 되면 그는 장정이다. 지게질을 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 처음엔 흔들려 넘어지거나 짐을 쏟기 쉽다. 그땐 양쪽 지게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다리에 힘을 주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서울역 지겟군으로 대별되던 지게질은 너무나도 거칠고 힘든 일이었다.

지게는 다용도로 쓰이는데, 노망 든 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릴 때(고려장)도 사용됐는데, 노모를 깊은 산 속에 버리려고 지게에 싣고 가는 중에, 뒷쪽 지게 위에서 어머니가 자꾸만 나무가지를 꺽고 있었다. 아들이 물어보니 ‘네가 나를 산속에 버리고 돌아올 때 길을 잃어버릴까봐 나무가지를 꺽고 있으니 돌아올 때 그걸 보고 돌아와라.’라고 했다나… 어찌 그 어머니를 버릴 수 있겠는가, 다시 모시고 왔단다.

또 다른 누구도 어린 아들과 함께 늙은 어머니를 산속에 버리고 돌아오려는데 그 아들이 지게를 챙겨 갖고 오려고 해서 물어보니 ‘나중에 아버지 버릴 때 다시 쓰겠다.’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노모를 다시 모시고 돌아 왔다던가…


누구나 업장처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겠지만, 필자는 얼마 전 아주 오랜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 하나를 벗었다. 공무원으로서 공사감독업무를 보던 20대 초 중반 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장기 출장지인 경기도 연천군의 초성리 역 앞의 어느 가게집에 방 한칸을 얻어, 거기에 기거하며 각지에 산재된(의정부, 동두천, 초성리, 전곡, 대광리, 신탄리…) 공사 현장의 감독 업무를 보았었다.

공사가 끝나고 철수 할 무렵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거마비를 좀 주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마침 가진 돈이 없어 가게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리게 됐다. 바로 갚아야 했으나 철수해 뒷 행정처리와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두어달 후 돈을 갚으러 가 보니 그집은 이사를 가고 없었다.

오랜 세월동안 온갖 수단을 다해 찾아보다가, 혹시나 하고 당시 속했던 지역인 연천군수에게 편지를 썼다. 30 여년 전의 일로 그 금액을 기억 할 수는 없지만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30만원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일단 200만원을(금액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대충…) 소액환으로 바꿔 동봉하고, 당시 주소를 적어 보내며 ‘그 분을 혹시 찾게 되면 전해주시고, 못찾으면 불우한 노인(그 분의 나이와 비슷한…)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신통방통하게도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연천군수라는 김기배 군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편으로 보냈던 소액환은 다시 돌아오고… 즉시 전화해보니 본인이 틀림 없었다. 근데 문제는 본인이 기억도 없을 뿐더러 그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찾아갈 기회를 노리다 마침 그 근처에 갈 기회가 생겨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 뵈었다.

나이는 80세로 따님과(따님은 경찰관 이었음) 함께 살고 있었고 연세가 있어서 허리가 많이 불편해 거동마저 어려우셨다.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100만원을 건네드렸다.

바로 앞집에 산다는 남동생이 찾아와 함께 소주 한잔을 나누고 아쉽게 집을 나오니, 오랫동안 지고 있던 지게를 벗어 놓은 양 마음이 이렇게도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