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양광으로 꿈꾸는 새로운 세상
[기고] 태양광으로 꿈꾸는 새로운 세상
  • 국토일보
  • 승인 2023.03.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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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

1999년 12월 31일 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종로 거리를 거닐며 새로운 천년을 꿈꾸고 있었다. 나는 아직 청춘이었고, 꽤나 이타적이고 이상적이었다. 내 가슴이 좀 더 뜨거웠고, 영혼이 좀 더 순수했던 때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나의 삶이 원만해지기를,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평화롭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했었다.

하지만 꿈꾸었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나 자신조차 원만해지기는커녕 울퉁불퉁 좌충우돌하고, 모난 성정은 여전하다. 모든 존재는커녕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경쟁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세상은 더욱 탐욕의 강이 깊어지고, 폭력과 전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오히려 평화와 상생의 세상은 팔만사천 리 밖으로 멀어지는 느낌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혐오와 증오가 4대강을 뒤덮은 가시박처럼 번지고 있다. 물을 찾아 이동하는 세렝게티의 누우떼처럼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욜로를 외칠수록 불안은 커지고, 워라벨을 찾을수록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도 밀레니엄의 꿈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적 부를 가져다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도 가져다주었다. 순간의 재미와 쾌락을 선물했지만 지속가능한 즐거움과 행복은 점점 인간의 곁을 떠나고 있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공동선, 세상의 평화와 상생, 마음의 행복을 위해 쓰이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욕망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일부 개인과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해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야누스와 같아 언제 통제불능의 괴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아이러니지만, 내가 과학기술을 외치면서도 과학기술이 열어가는 세상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요즘 나는 태양광으로 인해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있다. 태양광으로 인해 새로운 밀레니엄 목전에, 삼십 대 초입에 꿈꾸었던 평화와 상생의 세상을 다시 꿈꾸고 있다. 태양에너지가, 태양광 과학기술이 새로운 문명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인류는 에너지자원을 파괴와 약탈의 방법으로 획득했다. 사회경제시스템은 그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닮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의 성격과 빛깔에 따라 구동되는 사회경제시스템도 달라진다. 인류 역사가 피비린내 나는 약탈과 전쟁, 지배와 종속의 연속이었던 것도, 현대 사회가 무한경쟁 소비경제의 모습을 띄는 것도 그렇다.

태양에너지는 청정하고 안전하고 무한 재생이 가능하다. 지구는 지표면 1m²당 1일 평균 약 340W의 태양에너지를 받는다. 매일 17만 테라와트(5km²×340W)의 태양에너지가 지구에 쏟아지고 있다. 1년 간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약 7000배가 넘는다. 태양에너지를 온전히 활용할 있다면, 1분만 모아써도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태양광은 태양의 빛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과학기술이다. 꿀벌이 꽃을 다치지 않고 번성하도록 도와주면서 꿀을 채취하듯이 태양광은 인간과 지구를 살리면서 에너지를 생산한다. 태양광은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환경친화적이고, 평화적이다.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지구의 아픔은 치유되고, 세상은 따뜻해지고, 인간은 건강해진다. 누구든지 태양광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태양광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가 태양광 과학기술을 활용해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쓸 수 있는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햇빛처럼 밝고, 따스하고, 바라는 바 없이 아낌없이 주고, 모든 존재를 살리는 평화와 상생의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내가 태양광으로 다시 꿈꾸는 세상이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