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리뷰] 방음터널 화재
[전문기자리뷰] 방음터널 화재
  • 이경옥 기자
  • 승인 2023.01.03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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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주의하지 않고 함부로라는 뜻으로 ‘아무렇게’를 좀 더 분명하게 이르는 부사다.

기자가 최근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간 과천 방음터널 화재사고 취재 시 들은 여러 말들 중 각인됐던 말이기도 하다.

방음터널 화재의 원인은 이 짧은 부사에 함축돼 있다.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

있던 기준도 지침을 삭제했다. 국토교통부가 2009년 펴낸 도로건설공사기준 도로설계편람 부대시설편에는 방음벽과 방음터널 등을 포함한 방음시설 재질기준이 적시돼 있다.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재료는 자기 소화성으로 연소 시 화염을 발생하지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2012년에 ‘도로건설 방음시설 재질 기준’이 개정되면서 ‘불연성(쉽게 불이 붙지 않거나 빠르게 연소되지 않는 성질)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없앴다.

그나마 과거에는 방음벽에 베이스패널을 많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플라스틱 계열로 대체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채광성이 좋고 가볍고 저렴하고 가공하기도 쉬운 아크릴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방음터널에 쓰이는 자재의 특성을 갖추려면 화재 성능도 갖춰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음터널의 경우 방음벽은 불연성 자재를 적용한다해도 방음판에 적용할만한 적합한 불연성 자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채광성을 갖춘 방음판을 고집한다면, 가벼우면서 소음과 진동을 견디고 화재에도 강한 적합한 불연성 자재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상 그런 자재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배경에 있다.

취재를 하면서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방음터널이 화재사고에 취약한 것을 알고도 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2019년 발표된 방음터널 화재 취약성에 대한 연구논문에서 화재안전성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과 문제점, 개선방안 등이 명시돼 있다.

이 논문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판, 평균온도 538℃이상이 되면 강도가 급격히 저하되는 강구조체 그리고 방재시설 등급산정 기준의 미비는 방음터널의 화재안전성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라며 “방음터널의 화재안전성과 관련된 설치 및 품질규정은 전무한 실정이며 선행연구 또한 소음저감 효과 등에 집중돼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방음터널이 공기단축 및 시공의 편의성을 이유로 H형강의 구조체에 열가소성플라시틱인 PC(Polycarbonate) 방음판으로 시공되고 있어 터널 내 화재 등 재난상황발생 시 일반터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고속국도의 경우 2017년 기준 10개소의 방음터널이 설치·운영 중에 있지만, 그 중 9개소가 H형강 구조체에 PC 방음판을 마감재로 사용하고 있어 일반터널에 비해 화재하중이 크고 터널 내 화재발생 시 가연성 방음판을 통한 연소 확대 및 H형강의 온도 상승에 따른 변형 및 붕괴 등의 위험성이 높은 실정이라고 명시했다.

방음터널 내 방재시설 설치규정도 일반터널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게 돼 있어 초기 소방 활동 및 인명 안전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를 자세히 읽다 한숨이 난다. 연구가 현실화됐다.

“화재가 날 때 마다 모두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다 막상 개정 시점이 되면 기준이 낮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사안 역시 국토부가 법 제정 등을 강하게 추진해나갈지는 지켜봐야할 일입니다.”

취재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이 참 쓰다.

이경옥 기자 kolee@ikl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