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과 준정부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올해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노조를 대표하는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석해 주요 안건에 대해 발언하고 의결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가 공기업 36곳과 준정부기관 94곳 등 130개 공공기관에 도입된다.
한국전력공사, LH, 한국수력원자력, 국민연금공단, 예금보험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공기업과 준정부기관들이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국책연구원 등 기타공공기관 220곳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타공공기관 중에는 이사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아 적용이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기획재정부는 설명했다. 대상 공공기관은 노조 대표의 추천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 노동이사 1명을 뽑아야 한다.
노동이사제의 취지는 공공기관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경영의 한 축인 노동자를 경영에 참여시킴으로써 경영진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목적이 있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경영에 반영되지 않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 또한 공공기관 지배구조 내에 노동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자율경영·책임경영의 보장, 노사관계의 민주화와 안정화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질 제고, 공공재로서 보편적 서비스의 유지를 위해서도 노동자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 제도다. 유럽에서는 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19개 국가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시행중이다.
독일·스웨덴·프랑스 등 14개 국가가 공공·민간 부문 모두에 적용했고, 그리스·아일랜드 등 5개 나라는 공공기관에만 도입했다.
노동자 경영 참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선 노동이사제를 ‘공동결정제’라고 부른다. 노동자 가운데 선출된 노동이사와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주주이사가 동수로 이사회를 구성, 주요 안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다. 노동이사제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점을 꼽는다. 기업지배 구조가 주주이익 중심에서 이해당사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기업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와 재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의 노동이사제는 독일 제도를 모델로 삼았지만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 꽤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노동이사제는 협력적 노사 문화와 조합주의에 기반한 노사관계에 특화된 제도이기에 대립적 노사 관계와 일원화된 이사회 구조를 가진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노동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려 한다면 노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으며, 구조개혁, 사업전환, 인수합병 등에 제동을 걸 경우 혁신 속도가 크게 저하될 우려도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에 국한해 시행한다고 하지만, 민간 기업에서도 노조의 요구 등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이사제가 성공적으로 실현되려면 어떤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까. 먼저 노동이사의 명확한 역할과 구체적인 실시 방안을 규정한 제도 마련과 함께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이사는 전 직원의 의사를 위임받아 활동하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모든 근로자의 의사를 대변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시행착오의 과정을 동반한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노동이사제가 유발하는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행과정을 꾸준히 점검해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만이 노동이사제의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순기능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번 법제화를 통해 노동자를 의사결정의 주체로 받아들이고 노조는 경영에 책임을 갖고 임하는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