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언Ⅰ] 건설현장 안전보건 확보․중대재해 예방에서의 문제점
[긴급제언Ⅰ] 건설현장 안전보건 확보․중대재해 예방에서의 문제점
  • 국토일보
  • 승인 2022.04.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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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전임교수/ (사)한국건축시공기술사협회 건설기술인교육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건설현장의 안전강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건설업에서 중대재해 예방은 모두의 노력이 요구되는 사안으로, (사)한국건축시공기술사협회 건설기술인교육원 이재석 전임교수의 긴급제언을 통해 건설현장 안전강화 방안을 들어봤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 재 석 전임교수
이 재 석 전임교수

당사자 책임과 안전관리

국내외를 막론하고 선진적 건설 프로젝트는 기술적 모험성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초고층 빌딩, 해저 구조물이나 대심도 구조물 및 대경간 구조물, 우주 구조물과 같이 건설과정에 위험성이 높은 시설을 사업(Buiness)의 중요한 도구로 하는 공공 또는 민간 발주자도 많다. 기술적 모험성이 적더라도 모든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미래(Pro)라는 불확실성을 향해 쏘는(Ject) 모험(Venture)이다.

발주자에게는 기획부터 준공 및 시운전에 이르는 프로젝트 기간 중의 각종 위험성뿐 아니라 프로젝트 결과물을 이용한 사업의 성공 여부가 더 큰 모험이고, 설계자는 경험하지 못한 조건과 환경을 반영해 설계의 과학적·공학적 합리성을 담보해야 하는 모험이 따른다.

시공자에게는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면서 설계도 및 시방서 등의 물리적 실현을 위해 계획하고 운영관리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 외화를 벌어오는 해외건설은 국내에서의 건설보다 각종 위험성이 더 높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 건설현장은 군사작전을 방불하게 하는 수준의 조직편성과 자재조달 및 시공 작전(Operation)으로 이뤄진다.

건설업은 모험성이 내재하는 발주자의 주문에 의한 생산으로, 일회성 유기(有期) 프로젝트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즉, 발주자의 주문이 있은 후, 그것에 호응하는 수주희망자 중 발주자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자와 상호 자유의지에 의한 합의에 의거해 계약을 하고, 그 계약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다시 말하면, 건설 프로젝트의 각 단계를 구성하는 설계나 시공 등 과업을 발주하는 발주자(Owner/Employer=최고책임자)가 따로 있고, 수주자(Contractor=주문받아 계약한 내용에 대한 부분 책임자)의 품질, 예산, 공기 및 안전에 관한 관리목표는 발주자의 프로젝트 관리방침과 예산에 호응하고 있다. 주문을 받아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각 단계 발주자의 기본적인 책무이며, 궁극적으로는 원 발주자로부터 출발한다. 즉, 안전비용의 부담은 원 발주자를 필두로 각 단계 발주자의 중요한 사회적 책무(CSR)이며, SDG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공공사업은 공익이 전제이기에 결과물의 공익적 건전성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투입되는 각종 수주자의 적정한 이익을 보장하고 불합리한 손해를 방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장 내 종사자 및 근린의 생명과 건강 및 안심도 근본적으로는 원 발주자의 책임, 즉 비용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에 의해 한시적으로 관계를 맺는 프로젝트에서는 발주자의 적정한 권익과 수주자의 적정한 이익이 보장돼야 한다. ‘적정하다’는 기준은 현장의 환경과 공기, 공사비, 품질, 안전 간의 의존관계 조정(Trade off)을 거쳐 합의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수주자는 안전을 포함한 계약목표를 달성한다는 전제하에서 최소한의 투입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 추구자이다. 투입 최소화를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 기술경쟁을 하는 것이다. 기술개발 역시 생명과 건강의 위해(危害) 가능성을 높이지 않거나 줄이는 것, 또는 약간의 위험을 수반하지만 관리대책이 있으면서 대단히 큰 편익이 창출되는 것이 전제이다.

중요한 것은, 건설공사는 원수급이든 하수급이든 안전을 전제로 발주/수주해 도급계약한다는 것이다. 이 도급계약의 금액에는 품질·비용·공기뿐만 아니라 안전에 관한 리스크 테이크의 비용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안전한 공사를 지원하는 재원공급은 발주자의 사전책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과정과 결과의 안전을 실현하는 책무는 수주자에게 있다. 발주자나 수주자 모두 안전을 당연한 공짜라거나 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당연히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 예측이나 관리가 불가능한 사항은 보통 도급계약의 범위 밖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은 계약에 의한 이해 당사자 본인이 지는 것이 1차적 순리이다. 고용계약에 의한 근로자 개인의 안전수칙 준수에 관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당사자 책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안전사고 예방의 원칙이고 지름길이라고 본다. 자기의 부주의나 태만에 대한 책임을 타인이 진다면 누가 긴장하겠는가? 관리한계를 벗어나는 개인의 은닉적 태만과 부주의는 본인 책임이 당연하다. 다만,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거나 노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차상위 계약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식총액계약의 시공현장에서 생각하면, 기능자-하수급자의 반장-원수급자의 소장 순으로 기술적·관리적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리자의 급료에는 안전을 포함한 관할 범위의 관리수당이 포함돼 있다.

한편, 건설업체의 본사와 현장의 의사결정권 위임 정도는 회사나 프로젝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장소장이 신청한 안전관리비를 본사에서 무리하게 삭감했다면 고용자인 법인의 책임이 크다. 이때는 반드시 총괄경영책임자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재정 배분의 권한이 없는 안전관리책임자(CSO) 등은 말장난이다.

그와 반대로 안전관리 재정을 포함한 운영관리의 자율권이 현장에 많이 주어진 경우는 현장소장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권한위임은 각 건설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영전략의 범주이므로 공법으로 정할 사안은 아니다. 안전비용의 용처와 책임을 규명하는 상하향적 예산 및 회계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안전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성이 있지만 무한정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에 관한 계약을 잘 하도록 하고 그 계약이 잘 이행되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건설현장에서도 안전위생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행정적, 계약적, 운영관리적, 기술적 노력을 더욱 면밀하고 수준 높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사무 및 서비스 현장이나 고정시설에서의 생산현장과 같은 시각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건설산업에 적용하는 것은 건설 생산체계 및 당사자 책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처사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