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28주년 특별기획-현장르포] 하동 ‘악양 해솔마을’을 가다
[창사 28주년 특별기획-현장르포] 하동 ‘악양 해솔마을’을 가다
  • 이경옥 기자
  • 승인 2022.03.21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늘·산 전망 한눈에 ‘흙다짐벽 시공’ 특화설계 눈길

흙·유리·자작나무 등 자연 소재 적용 설계·시공
‘그 자리에서 난 흙을 직접 다져 만든 집’ 의의
국내 시공기술 보유 5인 추산… 이규봉씨 ‘독보적’
이규봉 건축가가 해솔마을을 안내하고 있다.

[국토일보 이경옥 기자] 파랗게 펼쳐지는 하늘. 한 눈에 들어오는 산. 그 안에 작은 마을. 마치 산수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하다. 하동 악양 해솔마을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 섬진강변 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 구례역에서 40여분 거리다. 꽤 높이 올라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고도. 맞은 편 산 아래 마을들이 아주 작게 보인다.

탁 트인 자연 전망을 갖춘 해솔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산에서 왔고, 모두 일곱 가구다.

빽빽한 집, 좁은 도로와는 정반대로 지어진 이 마을은 한 눈에 봐도 멋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주택들과 여유로운 공용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일곱 채 중 한 채를 제외하고, 여섯 채는 이규봉 건축가(건축연구소 알콘 소장, 한양대 겸임교수)의 작품이다. 흙다짐벽 시공을 접목한 주택도 있고, 일반 시공법을 적용한 주택도 있다. 하동 우수주택으로 수상한 집도 있다.

30여년 한 길을 걸어온 이규봉 건축가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 흙다짐벽 시공 이론과 기술, 경험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설계·시공·감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게 된 까닭은 흙다짐벽 시공과도 인연이 깊다.

20대 시절 정기용 건축가와 함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하면서 흙다짐벽 시공법을 전수받았고,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라는 깨우침도 얻었다.

“흙, 나무, 유리, 쇠 등 자연 재료로 집을 직접 짓고 싶었어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하동 악양 해솔마을도 그렇게 탄생했다.

건축주들의 의뢰를 받고 현장을 찾은 이규봉 건축사는 이 땅에서 느낀 감정을 기억한다. 현장을 찾은 그 날 ‘아! 이 프로젝트는 꼭 해야겠구나.’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해솔마을 프로젝트는 그의 설계와 시공으로 완성됐다. 흙다짐공법도 적용했다. 흙다짐공법은 그 곳에서 난 흙으로 집을 만든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땀 흘려 직접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도 흙다짐공법만의 매력이다. 국내에 흙다짐공법 시공 현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흙다짐벽은 말 그대로 흙을 다져서 강도를 발현시켜 완성됩니다. 자갈부터 마사토, 점토 등 다양한 흙이 골고루 배합돼야 하고 점토가 부족하면 시멘트를 넣어야 하죠. 흙다짐벽 시공에는 노동력이 80%가 들어가요. 콘크리트 건물이나 철골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주가 참여를 못하지만 흙다짐벽은 이틀 정도 교육 받으면 참여할 수 있어요. 얼마든지 보조하면서 배울 수 있지요.”

“해솔마을의 경우 필지 분할을 다 해놓은 상태에서 제가 설계와 시공을 하게 됐어요. 전용 공간보다 공용 공간이 훨씬 많은데 이것은 주민들의 합의가 있어서 가능한 부분이에요.”

해솔마을 주택 내부 설계를 설명하는 이규봉 건축가.

마을 주민들의 배려로 완공이 다 된 주택들을 직접 들어가 살펴본다.

먼저 노부부가 사는 집. 마을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주택이다. 통 창으로 하늘·산·마을 전망을 품고 있는 집 내부는 부부의 개인 공간이 분리돼 있다. 30년 동고동락한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것이자 부부의 요구사항을 수렴한 설계다.

아내의 개인 공간과 화장실 부엌이 보이고, 복도를 통해 맞은편으로 가면 직업이 교수인 남편의 연구실 겸 서재와 탕비실, 개인 공간이 나온다. 고개를 숙이고 서재로 들어와야 하는 위트도 설계에 담았다.

복도 가운데는 유리로 된 통 창이 있다. 이 문을 열면 중정이 나온다. 하늘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밤에는 별과 달이 보인다.

다음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짓기 까다로울 것이라고 예측한 곳이다. 집 뒤로 산이 맞붙은 땅에 위치해 있어서다.

넓은 마당을 둘러 놓인 돌을 밟으며 집으로 들어가니, 반전이다. 다른 집들에 비해 이 마을 특유의 전망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한 눈에 들어오는 산 전망. 하늘도 더 많이 볼 수 있다. 경사를 줘 설계한 지붕도 특이하고, 앞 뒤 유리 통 창이 돋보인다.

주방과 집 외부까지 이어지는 유리로 된 창도 인상적이다. 주방에서 집을 넘어 펼쳐진 마을의 탁 트인 하늘과 산 전망이 펼쳐진다.

“이 집은 산과 지형, 전망을 고려했어요. 유일하게 이 마을에서 옥상이 있어 마을의 전망을 다 볼 수도 있지요. 옥상에서 뒷산을 잇는 다리도 놓으려고 했지만, 아이가 어려 미뤘습니다.”

이규봉 건축가는 “이 집의 경우 건축주가 땅을 내놓으려고도 했고, 주택 설계·시공에 대한 기대감이 없던 집이기도 하다”며 “설계안을 보여드린 후 전적으로 제 맘대로 하라고 해주셔서 정말 그렇게 했다. 그만큼 애정이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옆집은 자매 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 주택이다. 집 외관에 흙다짐벽이 보인다. 그 자리에서 난 흙을 종류별로 잘 섞어 노동력을 들여 시공한 주택이다.

이 집 역시 자매의 개인 공간이 분리된 공간 설계를 적용했고 마을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집을 기준으로 앞마당과 뒷마당이 적절히 있어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마을의 초입으로 걸어가면 이규봉 건축가의 사무실이 나온다.

이규봉 건축가도 이 마을 주민인 셈이다. 이 건축가는 해솔마을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곳 전망에 반해 땅을 사고 사무실을 지었다.

통유리로 된 문을 열면 바로 하늘과 산, 맞은 편 마을이 펼쳐진다.

이 건축가의 공간은 흙다짐공법을 많이 적용한 게 한 눈에 보인다. 나무, 유리, 쇠 등을 과감하게 사용한 것도 눈에 들어온다. 2층으로 돼 있고 난방텐트를 둔 것도 인상적이다.

“천정과 2층을 잇는 저 쇠는 여름에 아주 뜨거워져서 계란이 익을 정도이지만 의도적으로 그대로 사용했어요. ‘이것이 쇠다’하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기용 건축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30대 초반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특별하다.

정기용 건축가는 그 당시 면사무소를 신축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목욕을 하러 대전까지 간다는 이야기에 면사무소 내 목욕탕을 배치했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해솔마을도 그 때 배운 것처럼 주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의견을 수렴해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했다.

설계와 시공 감리를 모두 할 수 있어 설계 의도와 시공자의 입장 등도 고려할 수 있는 것도 이규봉 건축가의 강점이다.

“처음에는 일반건축물은 시공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흙다짐벽 시공은 직접 노동력을 들여야 해서 어쩔 수 없지만, 일반건축물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시공을 준 건설사가 설계대로 일을 하지 않고, 하자도 많았어요.”

이규봉 건축가가 흙다짐벽 앞에서 시공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규봉 건축사는 기용건축에서 독립해 2011년 판교 주택 프로젝트를 하면서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게 됐다.

“시공을 같이 해보니 설계만 할 때 보다 백 배 뿌듯하고, 백 배 힘들었습니다. 설계를 원하는 대로 구현하기 위해, 공사비 손실을 막기 위해, 전문가만큼 잘할 자신이 있는 경우 몸을 계속 써야했지요.”

그가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50여개 프로젝트가 그의 손을 거쳤다.

“정기용 선생님 사무실에서 일할 때 직원들 절반이 한 번에 이직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 바람에 저를 포함한 몇 명이 1인당 6개의 프로젝트를 2년 간 달고 했어야하는 기간도 있었죠. 양적으로도 많은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걸어온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설계와 시공을 겸하다보니 속이 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고,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공사비를 받지 못한 김해 현장의 경우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 때 시공에 대한 회의가 와서 다 포기하려고도 했죠. 독립 후 같이 일을 했던 건축가 친구가 현장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나기도 했고요.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소규모 건축물 설계·감리 분리와 직영공사 범위 축소 시행도 타격이다.

“저처럼 설계와 감리 시공을 전부 할 수 있는 건축가에게는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줄어드는 셈이죠. 법의 취지는 좋지만 현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합니다.”

이규봉 건축가는 해솔마을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힘을 내게 됐다.

“일곱 가구 중 저에게 설계를 맡기지 않은 한 가구를 제외하고 부산 분들이세요. 흙다짐벽 시공 자료를 찾아서 그 집주인을 통해 저를 찾아오셨어요. 세 분이 찾아오셨죠. 공사비로 아직도 소송 중인 김해 프로젝트로 힘든 시기였는데, 김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겸 현장 답사를 온 날 하동 부지에서 받은 느낌이 좋았어요.”

그렇게 다시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며 프로젝트에 몰입하게 됐다. 시공에 대한 회의감이 깊었지만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이규봉 건축가는 올 가을 문경 유기박물관 흙다짐벽 설계 컨설팅과 시공에 참여한다. 현재 경주와 울주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흙다짐벽 시공 기술 교육을 위한 캠프도 구상하고 있다.

“정기용 선생님과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건축가 친구 신근식 교수가 아니었으면 이 공법은 한국에 소개도 안됐을 겁니다. 이 좋은 건축공법을 사장시키는 게 아까워서 캠프를 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