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의 상수화(常數化)가 더 위기
위기설의 상수화(常數化)가 더 위기
  • 국토일보
  • 승인 2008.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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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칼럼] 본보 편집인

 

   한국 경제에 다시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그 진원지임은 간파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채 이상기류만 키워가면서 위기설 자체만으로도  파괴적인 위험 인자(因子)임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설(設)에 의한 위기의식의 증폭이 오히려 더 큰 폐해를 일으키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환율의 급등과 증시의 폭락 사태는 위기설의 위력이 현재화한 실증적 사례다. 이를 테면 위기설이란  변수가 위기의 실재화와 상수화를 견인하는 꼴이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때의 뼈아픈 경험을 상기하면 일찍 경종을 울려주는 위기설을 그렇게 매도만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라는 말에 대한 우리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상처가 워낙 깊어 오히려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들의 심리요인이 미시경제는 물론 거시경제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국가부도 사태의 기억이 워낙 깊게 배어 있기에 위기 얘기만 나오면 속절없이 떨리고 모든 게 혼미스럽게 진화되는 양상이 이런 부작용이며 후유증이다. 요즘 ‘9월 위기설’이 맹위를 떨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이런 분위기의 상승 작용 탓일 것이다. 그럴 리 없다 싶으면서도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으스스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9월 위기설’은 애초부터 허구였다. 내용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들면 논리 구조가 너무도 빈약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까지 나서 최근 허구임을 공증한 정황만으로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위기설은 일찍부터(금년 상반기) 얼굴을 드러내며 혐오스런 분위기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몇 주일간 우리는 근거도 실체도 없는 괴담을 갖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괴담 수준의 설(設)에 지나지 않았던 이 루머에 왜 그토록 우리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경제 전반의 지각이 뒤흔들렸는가. 정말 차분하고 엄밀한 분석이 그래서  절실해 진다.

 

그리고 아울러 진정 또다시 위기설을 촉발할 위기 변수는 없는지도 속속들이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그래야 정말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위기대응 능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이런 수준의 루머에 우리 경제가 요동친 것은 성장률· 물가· 고용· 국제수지로 나타나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크게 떨어진 데 원인이 있다. 여기에다 심리적 변수로 작용하는 정부의 위기관리, 위기대응 능력에 구멍이 뚫리고, 정책마저 성장과 물가안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탓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만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인식해야할 한국경제의 문제는 지난 10년의 좌파 정권에 의해 구조적으로, 근본적으로 척박해진 경제 및 기업 환경, 다시 말해 부실해진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위기 요인이 도사려 있는 것도 이런 기초체력의 약화 탓임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보다 일찍부터 이 부문에 일관된 정책의지를 투영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이 정부는 말로만 규제완화 등을 내세운 채 척박한 경제환경 개선에는 인색했다. 그 결과는 위기설에 허둥대기만 하는 등 오히려 도사려 있는 위기 요인들의 수위를 끌어 올리기만 했다.


 지금 중· 단기적 관점으로 시점을 넓혀 보면 건설사의 경영난은 보통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무려 224개의 일반· 전문건설업체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도산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 가까이 늘어났다. 연말로 가면 도산행진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건설사의 도산 사태야말로 진짜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위험변수다.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의 위기 요인으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부실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그 실체다. 부풀어난 가계 빚 역시 우리의 경제위기를 가시화할 화급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물경 660조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건설사의 도산사태와 이로 인한 PF 부실화, 그리고 가계부채의 비대화는 실체를 드러낸 위기 변수로 우리에게 가장 근접해 있다. 그만큼 건설사와 가계의 기초체력이 가장 약해졌다는 반증인 셈이기도 하다. 때문에 더 이상 이들 위기 변수들이 위기 상수(常數)화 하도록 방치하는 일은 없어야 할 줄 안다.


 우리가 정말 겁내야 할 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몰락의 위기인데 누구라도 위기라고 하지 않는 점이다. 더구나 위기에 처한 당사자가 위험의 실체를 드러내며 하소연 하는데도 한 귀로 흘려버린다면, 그리고 이번과 같은 허구의 위기설로 위해(危害)로운 환경을 더욱 증폭시키기만 한다면 불원 위기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