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談事談]공정관리가 침몰하고 있다
[時談事談]공정관리가 침몰하고 있다
  • 국토일보
  • 승인 2021.08.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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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교수/강원대학교

[時談事談(시담사담)-이 시대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공정관리가 침몰하고 있다

김 선 규 교수
김 선 규 교수

연일 견디기 힘든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차를 몰고 강남으로 향했다. 중견 CM회사 회장님, 사장님과 점심약속이 잡혀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매일 기록을 갈아치우는데 여름휴가 때문인지 도심은 한가하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력한 에어컨 한기(寒氣)가 반갑다. 강남 중심가는 아니지만 꽤나 유명한 식당인데도 한산하다.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많아 보인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동년배 CM교수님이 환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신수가 훤하십시다.” “왠걸요. 집에 콕 박혀있으니 창백한거지요.” 소탈하게 웃는다. 참 좋으신 분이다. 일상(日常)을 화제 삼아 가볍게 얘기하던 중, 사장님과 청바지 입으신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회장님은 바쁘신가? 청바지 입으신 분이 가까이 다가와 마스크를 벗으니 바로 회장님이시다. “젊은인줄 알았어요.” “그래요? 전 청바지를 즐겨 입습니다.” 수줍어하시는 모습이 너무 순수하시다. 항상 진지하시고 배려심이 많으셔 조심스러웠는데, 칠십 가까운 연세에도 여전히 해맑으시니 참 부럽다.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한 다음, 당연한 듯 CM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요즘 아파트 건설공사 발주가 많아 간만에 CM이 호황이라니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하다. 회장님께선 여전히 조심스럽다. 호황 다음 불황을 염두에 두시는 듯싶다. 역시 최고경영자는 다르군. 건설위험관리(Construction Risk Management)를 본능적으로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대뜸 “요즘 공정관리하는 사람 찾기 힘들어요.”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신다. 요지는 CM용역에 공정관리 기술자를 투입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공정관리 기술자들 많을 텐데요.” 의아해 했더니, “아니예요. 찾을 수가 없어요.” 손사래 쳤다.

그 많던 공정관리 전문가들은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30~40년 전 중동에서 미국이나 유럽 CM회사와 함께 일하며, 공정관리 실무부터 배우셨던 그 많던 공정관리 전문인력들이 모두 은퇴하신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10여 년 전만 해도 공정관리 모임을 열면 수십명이 참석했고, 나름대로 공정관리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나보다 연배가 아래이니 아직 실무에 있을텐데,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는 이유는 뭐지?

하기사 어느 CM교수님께서 “이제 더 이상 공정관리 가르치지 않습니다.”라며 폭탄선언하시기에 얼이 나간 적도 있다. 대학에서 공정관리를 가르쳐도 실무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니 힘이 빠진다는 한탄에 동병상린(同病相燐)이었다. 정말 큰 일이다. 말로만 공정관리가 중요하다고 떠들어 댈 뿐, 돌아서면 대충 그려놓은 공정표를 벽에 붙여놓고, 여전히 큰 목소리로 쪼아대고 닦달하는 구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공정관리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공정관리가 건설사업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는 기관차(Locomotive)이기 때문이다. 공정관리는 개인의 능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발생하는 위험을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로 헷지(Hedge)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국내 건설현장은 여전히 절차나 시스템보다 개인의 능력에 과하게 의존한다. 그리고 경험과 지식은 여전히 개인 소유다.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최근 어느 대규모 초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비라이너 공정표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공정표 작성 문의가 들어왔다. 회사에서 몇 차례 초고층 아파트 건설공사를 시행했는데 그때마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실수를 사전에 예방하고 싶단다. 그런데 공정표 작성 비용은 터무니없다. 제대로 작성된 CPM 공정표와 체계적인 공정관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여전히 저평가하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공정관리할 경우 수십억 아니 수백억의 손실을 예방하고 이득마저 챙길 수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공정관리 효과를 돈으로 정확하게 환산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공정관리 효과는 수많은 실제 사례에서 명확하게 입증됐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얼마 가지 않아 공정관리는 실체 없는 허상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공정관리를 메인기능이 아닌 참조기능으로 치부하는 한, 공정관리 전문가가 되겠다며 선뜻 나서는 젊은이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는가? 의구심이 들다가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빈말은 아닌 듯싶다.

“사장님, 제가 찾아볼께요. 정 안되면 제 제자라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진다. 공정관리가 침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