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談事談(시담사담)] 無用之用-쓸모없다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
[時談事談(시담사담)] 無用之用-쓸모없다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
  • 국토일보
  • 승인 2021.08.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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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규 교수/충북대학교

[時談事談(시담사담)-이 시대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無用之用-쓸모없다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

김 옥 규 교수
김 옥 규 교수

‘無用之用(무용지용)’은 ‘莊子·人間世’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 성어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쓸모없음의 쓸모’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주 산악자전거를 탄다. 헐떡이며 오르는 순간은 힘들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다. 간신히 올라 한 숨 돌리고 나서야 내 몰골을 겨우 살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어쩔 수 없이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는데, 어느새 내 발목은 잡초에 베여 쓰라리다. 잡초에 대한 원망이 스쳐 지나간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말라갈 무렵, 나는 얄미운 잡초에 생각이 미친다. 내 발목에 상처를 낸 이 잡초가 없다면 어떻게 되지? 잡초가 없다면, 그 흔한 돌이 없다면, 잡목으로 가득한 오솔길이 없다면 어떻게 산악자전거를 타지? 정말이지 너무 흔해 쓸모없는 이러한 것들이 모여 산을 이루었고, 낭떠러지를 막아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내가 산에 오를 수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無用之用’의 진정한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쓸모없음의 쓸모’가 완전한 미학적 의미로 승화하는 순간 주변의 멋진 풍광이 새로운 의미로 눈에 들어온다.

대목장은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천지사방을 헤매고, 가구의 장인은 가장 적합한 재료를 구하려 혈안이 된다. 하여 좋은 나무는 채벌돼 한옥의 대목이 되고, 멋진 가구로 남는다. 하지만 굽고 작아 쓸모없는 나무들은 산의 위용을 만들어낸다. 굽은 나무, 쓸모없는 잡초, 못 생긴 자갈과 바위가 뱀, 독충, 멧돼지, 모기, 파리와 어우러져 너무나도 아름답고, 위대하고, 찬란한 자연을 만들어낸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자각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건축기술로 세계 최고층 빌딩인 버즈 칼리파, 전 세계에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싱가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등을 건설한 바 있고, 신수도인 세종시에 이와 같은 건물이 신축되고 있다. 이 위대한 건물을 만드신 분들, 기초를 만드신 토목 엔지니어, 기본 및 상세 설계를 담당하신 설계디자이너, 시공을 하신 시공 전문가, 그리고 기계, 전기, 승강기 등 설비 전문가들에게 이 글을 통하여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이러한 위대한 건물의 탄생 속에서도 장자의 ‘무용지용’의 의미가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예가 바로 가설재이다. 가설재는 본 건물이 완공되면 사라지는 건설 자재이다. 아름답고 위대한 건물의 탄생과정에 가설재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된다. 그러나 최근 종종 발생하는 건설사고가 가설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을 우리 건설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지하고 있다. 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까 ?

최근 국방부 자문위원의 자격으로 평택의 미군기지 건설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우리 자문위원들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페인트 시공현장을 목격했다.

평택미군기지는 전체가 평지인지라 각 기지에 물을 공급하려면 주변 건물의 약 2배가 되는 높은 물탱크가 필요하다. 여러 개의 높은 수조 탱크에 미군 마크를 넣으면 사방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이 마크 페인팅 공사를 위해 마치 물탱크를 새로 만들 듯 가설재를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이중 삼중으로 철저하게 설치,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후 페인트 시공을 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투입됐을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가설자재의 단가가 외국의 절반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또한 건설 시에 예산절감의 주요 항목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정말이지 ‘無用之用’의 의미를 모르는 처사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것, 흔한 것, 하찮아 보이는 것이 없다면 과연 그 웅장하고 완벽한 수많은 건물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무용지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