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談事談(시담사담)]까마귀 아래 청솔모 그리고 CM
[時談事談(시담사담)]까마귀 아래 청솔모 그리고 CM
  • 국토일보
  • 승인 2021.07.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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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교수/강원대학교

[時談事談(시담사담)-이 시대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까마귀 아래 청솔모 그리고 CM

김 선 규 교수
김 선 규 교수

코로나 펜데믹이 1년 반 이상 지속되다 보니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더구나 해외여행은 접은지 오래다. 이런 답답한 시절에는 해외여행 TV 프로그램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지난달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페로제도 편이 방송됐다. 재작년 가을에 방영됐던 것을 살짝 편집해서 재방영한 것이다. 페로제도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사이 북해 중앙에 떠 있는 춥고 황량한 군도다. 방송 중간쯤 페로제도의 새들을 박제해 집안 가득 전시한 옌슨 케헬슨 씨의 집이 소개됐다.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에 주로 서식하는 귀엽고 앙증맞은 새인 퍼핀(Puffin) 박제와 함께 까마귀가 청솔모를 물고 있는 박제도 있었다.

‘청솔모가 왜 저기 있지?’ 청솔모는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쌘돌이다. 다람쥐보다 약간 크지만, 귀 끝에 털을 삐죽 새운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산행길에 청솔모를 발견하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그런데 북해 외딴섬에 청솔모가 살다니? 궁금해져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청솔모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럽, 시베리아, 중국, 한국, 일본까지 광범위하게 서식한단다. 적응력이 뛰어난 녀석이군.

얼마 전 산행길에 그 귀염둥이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구릉산 중턱 정자 근처였다. 아주머니들이 “저놈, 저놈, 큰일 났네. 어쩜 좋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 서둘러 올라갔다. 등산길 옆 가문비나무 줄기 중간 쯤에 청솔모가 놀란 눈으로 나무 꼭대기를 주시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른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꺼억 꺼억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 사나운 날개 짓이 들려왔다. 까마귀가 청솔모를 노리며 당장 낚아챌 기세였다.

나는 얼른 돌맹이를 집어 들어 까마귀 방향으로 냅다 던졌다. 돌이 빗나갔는지 까마귀는 위협적으로 계속 울어댔고, 청솔모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다시 큰 돌맹이를 골라 까마귀 방향으로 힘껏 날렸다. 이번엔 제대로 던졌는지 까마귀가 꿰액거리며 건너편 산등성이로 쏜살같이 줄행랑쳤다. 그제서야 아주머니들이 안심했는지 청솔모에게 “빨리 도망가. 어서” 재촉했다. 나도 덩달아 빨리 달아나라고 손짓했지만, 청솔모는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나무 꼭대기만 분주하게 살펴볼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안타까웠다.

요즘 CM이 청솔모 처지같아 씁쓸하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행색이 여지없이 까마귀 아래 청솔모다.

2021년 6월 28일 이헌승 국회의원이 건설기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명분은 건설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발주자의 업무를 지원하거나 대행하고, 건설사업의 전 과정 또는 일부를 관리해 공사비 절감, 공기 단축 등 건설사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PM(Project Management)의 국내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많이 듣던 얘기다. 25년 전 CM이 도입될 때 내세웠던 명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요약하자면 이제부터 CM으로 정의했던 건설사업관리를 PM이라 부르고,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다시 나누겠다는 선언이다. 그럼 CM은 어디로 갔지? PM에 잡아 먹혔나? 감리를 CM이라 부르겠다는 건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

CM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다. 국제화된 요즘, 특정 국가가 CM의 정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변경할 수 없다. PM은 제조, 항공, 선박, 연구개발 등 모든 유형의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를 의미한다. 그중 건설프로젝트관리를 CM이라 한다. 건설산업에서 PM과 CM은 같은 말이다. 그런데 왜 CM을 버리고 PM이라 불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건설사업관리와 감리를 분리하자는 제안은 일리가 있다. 다만 전제는 CM의 발전을 위해서다.

어떤 분은 감리를 아예 발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감리는 발주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이기도 하다. 다만 감리의 업무 범위를 품질과 안전으로 국한 시키면 어떨까? 건설사가 하는 거라며 대충 흉내만 내는 공정, 원가, 계약, 정보, 기술 검토 등을 감리업무에 포함시킬 필요 없다. 즉 품질과 안전 이외의 업무는 CM으로 발주하는 것이다. 물론 CM을 발주하면 감리는 자동으로 포함된다.

발주자가 CM을 직접 수행할 수 있다면, 감리만 발주하면 된다. 그런데 발주자가 CM을 발주한다면, 계약서에 CM의 책임조항을 추가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CM계약은 CM for Fee 방식이라며, CM의 잘못에 대해 법적·재무적 책임을 부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계약방식에서는 제대로 된 CM을 기대하기 어렵다. CM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법적·재무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CM을 수행할 것이다. CM의 책임조항은 계약서에 명시하면 된다. 물론 CM용역대가는 책임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CM의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제안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다양한 제안들을 오픈 마인드로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場)부터 활성화돼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다. 소위 엘리트라는 몇몇이 밀실에서 주도하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또한 자칭 각 분야를 대표한다는 몇 분이 토론 서너번 하고, 비밀스럽게 발의하는 졸속행정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들을 오랫동안 진지하게 경청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당연시되는 개방형 인터넷 시대다.

더 이상 CM을 청솔모 신세로 방치하지 말자. CM을 담비나 쪽제비로 키워, 까마귀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숲속의 평화도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