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리뷰] 속 빈 강정
[기자리뷰] 속 빈 강정
  • 조성구 기자
  • 승인 2021.05.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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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일보 조성구 기자] 국가 존재의 이유는 일견 단순하다. 현대국가는 적의 침입을 방어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먹고 살 기반 마련이 1차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사명을 가지고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다양한 이슈를 논의했지만, “더할 나위 없는 대접을 받았다”는 그의 평가와는 달리 그다지 얻은 것은 없어 보인다.

한국은 정상회담에서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공장 구축을 위해 19조 원 투자를 결정했고,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에 1조 원을 들여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하이호 등에 법인을 짓고, SK이노베이션은 약 9조 원을, 현대차도 약 8조 원을 투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온 이득은 최대사거리·탄두중량 제한이 있던 42년 된 ‘미사일 지침’의 종료와 코로나 백신 한국군 55만명 분 무상지원뿐이다.

미사일 지침 종료로 미사일 개발은 물론, 우주군사력과 관련한 기술력 확보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전시작전권이 아직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이는 성급한 소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으로 글로벌 백신 생산허브 구축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뉴스도, 백신 원액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원액을 받아 ‘병입’만 한다는 제약 하에 공장만 빌려주는 ‘메이드 인 코리아(차이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양국 정상은 국내 이슈인 원전과 관련해서는 “원전사업 공동참여를 포함해 해외원전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문구보다 중요한 단서는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 유지 합의다.

공동성명과 함께 공개된 팩트시트에도 원전공급 시 ‘IAEA 추가의정서 가입 조건화’를 양국 비확산 공동정책으로 채택하기로 하는 등 단서를 달았다. 한미 원전생태계 협력이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렸다.

아쉬운 것은 글로벌 원전시장의 수출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발주가 이어지고 동유럽 국가들도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가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수주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를 제지하는 경제동맹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향후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원전정책은 정상회담으로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해외원전시장 협력 강화’라는 회담 워딩이 나오자 일부 언론들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 변화’를 타이틀로 기사를 송출했고, 산업부는 “국내 탈원전 정책과 원전수출은 다른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원전업계는 “내수시장이 받쳐주지 않는 수출산업은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정상회담으로 미국은 국내 에너지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나아가 글로벌시장에서 원전 경쟁력 지위 강화 목표도 달성했다. 우리에게는 ‘준 것은 넘쳐나지만 받은 것은 없는 회담’이라는 일각의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회담의 성과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이래저래 남은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