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갑을장유병원]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치매'
[의학칼럼 갑을장유병원]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치매'
  • 국토일보
  • 승인 2021.02.02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민재 신경과 전문의
갑을장유병원 과장

5년 후 치매환자 100만명… 치료제 無 ‘예방’ 최우선
치매, 질환 이해하고 치료시기 앞당기는 게 ‘중요’

내 머릿속의 지우개, ‘치매’에 대해 알아본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노인인구 만큼, 치매 인구도 급증했다. 최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로 진단 받았다. 5년 후엔 우리나라에만 치매환자가 1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 지팡이 찾지 못하는 어머니… 경도 알츠하이머 진단
70대 여성 환자 사례가 있다.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가까운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치료받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저질환 없이 지내던 분이었다. 갑자기 새벽 3시에 딸에게 전화가 와서 “내 지팡이가 어디 갔는지 못 찾겠다”는 뜬금없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달려가 보니 지팡이는 집안구석에 널브러져 있었고, 어머님은 추운 바깥에 헤매고 계셨다.

길 건너 전봇대에서 누가 자꾸 자기를 불러서 안 나가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항상 잘 정돈돼있던 집안은 쾌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옷가지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깜짝 놀란 딸과 사위가 어머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와 정밀 치매검사를 시행했다. 인지종합검사에는 경미한 기억력 저하와 인지장애가 관찰됐고, 뇌MRI검사에서 전두?측두?두정엽과 해마의 위축소견이 발견됐다.

경도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단했고, 곧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망상?환각, 수면장애 증상은 호전을 보였으나, 인지장애 증상은 지속돼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 어머니 먹을 반찬은 쉰김치 뿐… 혈관성 치매 진단
두 번째 사례는 ‘어머니의 마지막 반찬’이다. 이분도 70대 여성이다. 새하얗게 샌 머리에, 보행기를 몰고 세 딸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평생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했던 분으로 자녀들 모두 대학에 보낸 이야기부터, 어제 손주들이 재롱 피운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말씀을 늘어놓았다. 참다못한 첫째 딸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끊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엉망이었어요. 처음 보는 길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온 바닥은 얼룩에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어요. 부엌에 있는 냄비는 오래된 음식이 담겨있어 쉰내가 났고, 냉장고 안 반찬통에는 곰팡이가 피었죠. 엄마 반찬 중에 먹을 만 한 건 쉰김치 뿐이더라고요.”

인지종합검사에는 뚜렷한 기억력저하와 집중력, 언어능력, 수행기능 장애 등의 다발성 인지장애소견이 관찰됐고 뇌영상검사에서 뇌내혈관의 다발성 동맥경화와 뇌경색 소견이 나타났다.

혈관성 치매로 진단했고, 2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일부 증상 완화는 있었으나 인지저하증상이 지속돼 최근에는 요양병원에 입소했다고 한다. 아직 어머니의 마지막 김치는 냉장고에 있다고 한다. 볼 때마다 눈물이 나서 치울 수 없다고….

이렇듯 치매는 개인의 고통보다도 가족의 고통이 더 큰 문제다. 갑자기 화를 내고, 욕을 하는가 하면, 남의 물건을 훔치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 경찰서에 다녀오기도 한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대소변을 따라다니면서 치워야 하고, 간병에 효자 없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게 한다.

치매는 현재 치료제가 없다. 현재는 예방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질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치료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