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동주택 화재대피 시설 의무화해야
[기고] 공동주택 화재대피 시설 의무화해야
  • 국토일보
  • 승인 2020.07.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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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권 디딤돌 대표/한국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한정권 디딤돌 대표/한국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한정권 디딤돌 대표/한국재난정보학회 특별회원사.

공동주택 화재시 재해 약자(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등)를 위한 화재 대피시설은 요원한가?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흔들어 놓았던 4월 8일 울산의 아파트 화재사고를 기억하는가? 친구와 라면을 끓여먹고 집안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향초를 켜놓았던 것이 재앙의 씨가 됐다.

창문을 열어놓고 늦은밤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잠깐 집안을 비웠던 18세 고등학생 형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상하기 싫은 장면을 보게 됐다. 9살 어린 동생이 집에 남겨져 있는데 아파트가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형은 동생을 살리겠다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그렇게 불속으로 뛰어든 형은 동생을 구하지도 못하고 현관문으로 다시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불길이 미치지 못하는 베란다로 나갔다가 밀려오는 연기와 불길을 피하기 위해 창문 난간대를 붙잡고 허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기운이 다한 18세 고등학생은 13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저 순간이 영원처럼 길고 긴 시간을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피워보지 못한 9살 동생과 18살 청년을 하늘로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무력감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아파트 발코니(통칭 베란다)에 어린 동생과 안전하게 불속을 탈출할 수 있는 피난기구가 있었다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외양간에 소들은 아직도 가득하고 1년에 40만채 이상 외양간이 만들어 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 임산부를 위한 화재대피 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

기술이 없고 제품이 없다면 주장할 수 없지만 이미 시장엔 승강식 피난기를 제작 판매하는 회사가 여러 곳이 있다. 승강식 피난기는 재해약자들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는 피난기구다.

정부는 법령을 정비해서 실질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화재대피 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 지자체도 조례 및 건축 심의기준에 재해약자를 위한 화재 대피 승강식 피난기를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심의기준이 정비되면 시장에 진출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안전한 아파트 문화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요즈음 ‘k방역’에 이은 ‘k방재’를 브랜드로 추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화재로 사망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화재로 어머니 아버지 동생 친구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 길은 안전한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다.

안전한 아파트를 위해 수많은 시설들이 장착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다고 에어백을 포기하지 않듯, 건물에 스프링 쿨러가 장착돼 있다고 피난기구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법은 포기하게 만들어져 있다. 건물주와 업자는 가장 저렴한 장치를 선호하는 경제동물이다. 경제동물의 본능에 맡겨 놓으면 우리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다. 울산의 안타까운 형제를 기억하면서 제대로 된 대한민국을 만들자.

이 글을 쓰는 중에 화마 속에서 엄마가 어린 아이를 던져 지나가던 전직 미식축구 선수가 받아 생명을 살리고 자신은 사망한 엄마의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