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설계하자의 보완요구를 거절한 경우 설계자의 법적책임
[기고] 설계하자의 보완요구를 거절한 경우 설계자의 법적책임
  • 국토일보
  • 승인 2020.06.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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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호 건설법무학박사/한국CM협회 건설산업연구센터장

"설계사, 발주자 설계변경 신중하게 대응해야"
‘설계사 손해배상책임 인정’ 최초의 대법원판결 나와

정 녕 호 건설법무학박사
정 녕 호 건설법무학박사

설계회사를 경영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발주자의 빈번한 변경 또는 재설계요구이다.

발주자가 재설계를 요구하는 이유도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한 변심 또는 발주자의 착오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며, 변경 또는 재설계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설계사의 경영상 압박이 되고 이러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경 또는 재설계요청이 있을 경우 경영자 또는 관리책임자가 신중히 판단해 이에 응하거나 혹은 거절하게 된다.

이때 설계의 보완요청을 거절하는 경우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까.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판결(2020. 1. 30 선고 2019다268252)을 통해 법적책임의 범위 및 발주자로부터 설계의 보완 또는 재설계 요청이 있을 경우 대응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사건의 개요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방식(이른바 Turn-key)’ 계약에서 설계에 하자가 있어 발주자가 보완설계를 요청했으나, 설계자가 이를 거절해 시공자가 다른 회사에 보완설계를 맡겨 그 설계도서대로 시공을 완료했다.

이후 시공자는 설계변경을 이유로 발주자에게 계약금액변경을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으나 당초설계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사안으로서 발주자의 책임 없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 패소하게 된다. 이후 시공자는 설계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설계사의 채무불이행책임이 인정돼 계약으로 정한 한도액(약 77억여 원) 및 지연손해금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설계하자를 이유로 설계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판결이라는 점이다. 배상액 또한 계약에서 정한 최고한도액 즉, 설계계약금 전액과 이에 더해 지연손해금도 배상하라고 하여 일면 가혹해 보일 정도이다.

소송과정에서 민법 제669조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 또는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주장이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도 아쉬움이 있다.

더 아쉬운 점은 발주자를 상대로 한 계약금액 변경요청 소송에서 설계사가 보조참가 했을 때의 대응이다. 이 재판에서 설계에 하자가 있음이 확정 됐는데, 판결문에 나와 있듯이 보조참가인에게도 판결의 효력이 그대로 미치는지와 소송고지를 받은 사람이 참가하지 않은 경우라도 참가할 수 있었을 때에 참가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응했는가의 점이다. 관련 기록을 모두 구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판단할 수는 없으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러한 판례가 생겼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발주자가 보완설계 또는 변경을 요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경우 보다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법리적으로도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는 점이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부담이 하나 더 늘었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