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의 가치
입지의 가치
  • 이경운 기자
  • 승인 2020.02.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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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리뷰

서초구에 거주하는 A씨, 새벽 5시경 급성심근경색이 발병했다. 그는 구급차로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받았고, 오전 8시 원인을 해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세계 최상급 의료서비스를 누린 것. 그러나 모든 국민이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이들 종합(대학)병원이 대도시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내에서는 2017년~2019년 사이 급성심근경색과 중증외상 발병환자가 응급실 이송 중 2362명 사망했고, 환자의 절반 이상이 골든아워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했다. 입지에 따른 양극화다.

전문병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도시와 역세권에서는 피부과도 ‘미용’과 ‘치료’의 기능에 따라 손님을 나눠받을 만큼 다양한 병원이 있지만, 지방에서는 아이 낳을 산부인과마저 찾아다닐 지경이다.

같은 국민이지만 더 높은 주거 인프라를 누리느냐 못 누리냐의 차이. 이것이 ‘입지의 가치’다. 이것이 부동산가격을 결정한다.

현장에 나가보면 키워드로 ‘입지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명문 초등학교 배정’, ‘지하철역이 가까운 역세권’, ‘쾌적한 조망·일조권’ 등이다.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세대는 ‘종합(대학)병원 인근’도 선호대상에 포함된다.

직장이 가까운 곳에 살아야 퇴근 후의 삶 ‘워라벨’을 누릴 수 있고, 내 아이를 위해 학군이 좋은 곳에 살고 싶다. 남동향과 남서향도 좋지만, 정남향에서 살아보면 왜 정남향인지가 느껴진다.

이러한 ‘입지의 가치’를 누리고 싶은 대기수요가 발버둥치며, 시장에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청약점수 69점(4인 가족 최대점수)으로도 전세에 살며 당첨만을 기다리는 40대, 자녀가 없어 박탈감(가점제, 특별공급 모두 제외)에 처한 30대 등 사연들이 즐비하다.

사연의 핵심은 집값이다. 이들이 구입할 수 있는 기존 주택이 비싸졌다. 이들에게 오른 집값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라 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수요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곳이 서울이다. 서울 부동산시장은 ‘입지의 가치’를 발판삼아 대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입지의 가치를 누릴 수 없는 도시들은 거품이 꺼진다. 지방에 공공기관을 분배하는 대역사를 펼쳤음에도, 거점도시로 도약하지 못한 혁신도시가 즐비하다. 여전히 기러기들은 서울·수도권 둥지를 남겨두고 있다. 독점 분양보증으로 권좌에 앉은 HUG(본사 부산) 직원들도 서울둥지가 많다. 모든 것이 정부의 폐단에서 비롯됐다.

힘들지만 한 번 더 고해 본다. 18번이나 부동산규제를 이어갈 고집이라면, 이제라도 한번쯤은 서울에 공급을 늘리는 계획을 세워보자. 청년주택, 임대주택 등 서민복지형 생색내기식이 아닌 주거시장 중심축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살만한 집을 공급해 보자. 거래세도 못 낮추면서 무얼 할 수 있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