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일보 현장 25時] 블랙 아이스, 도로계획·설계단계서 안전예산 확보돼야 예방가능
[국토일보 현장 25時] 블랙 아이스, 도로계획·설계단계서 안전예산 확보돼야 예방가능
  • 국토일보
  • 승인 2020.01.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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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국토일보 안전 전문기자/ 공학박사/기술사/지도사

"블랙아이스 사고, 도로계획이나 설계단계에서 안전예산 확보해야 예방 가능하다"

안전예산 확보 없이는 ‘블랙아이스’ 거대한 벽에 또다시 가로막힐 가능성 높아
SOC 안전영향평가로 안전성 확보와 안전예산 반영 여부 평가 필요
‘도로설계기준’만 만족하면 된다는 발주처와 설계자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도로 위 어둠의 살인자인 ‘블랙 아이스(Black Ice, 살얼음)’ 로 인한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39명의 사상자를 낸 상주-영천고속도로의 다중 추돌사고를 비롯해, 올해 들어 경남 합천에서 또다시 ‘블랙 아이스’ 사고가 발생해 자동차 41대가 연쇄 추돌하고 운전자 10명이 다쳤다.

‘블랙 아이스’ 현상은 기온이 갑작스럽게 내려갈 경우, 도로 위에 내린 비나 눈이 얇은 빙판으로 얼어붙는 현상이다. 얼음이 워낙 얇고 투명하므로 도로의 검은 아스팔트 색이 그대로 비쳐 보여서, 검은색 얼음이란 뜻의 ‘블랙아이스’란 이름이 붙여졌다.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정부와 주요 언론 등에서는 '블랙 아이스' 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이 감속운전을 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만 이야기 할 뿐이다.

도로 선형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와 안전시설에 대해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도로를 만든 공급자는 잘못이 없고 사용자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도피성 책임회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블랙아이스’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는 결빙취약 관리 구간을 2배로 늘리고 자동염수분사장치, LED 결빙 주의표지, 도로 내 돌발 상황을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스마트 CCTV 등을 확충하겠다는 안전 대책을 최근에서야 발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이지만 이제라도 안전대책을 강화하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도로계획이나 설계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정부당국에서는 도로건설과 같은 SOC 사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도로를 계획하거나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안전전문가를 참여토록 하여 도로 사용 시 안전성이 제대로 확보되었는지, 안전예산은 적절하게 반영되었는지 여부를 평가토록 해야 한다.

안전영향평가를 통하여 설계단계에서부터 '블랙 아이스' 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지, 교통사고를 유발할 도로선형이나 구조의 위험은 없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블랙 아이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다설계라는 이유로 감사가 두려워 법적인 ‘도로설계기준’만 만족하면 된다는 발주처와 설계자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도로설계기준’을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고 발생가능성 등을 고려해 안전한 도로가 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발주처에서는 안전전문가를 참여토록 해 착수단계에서부터 자문을 받고 있다. 그러나 ‘블랙아이스’와 같은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도로선형을 변경한다거나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안전전문가 의견은 사업비와 같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헌신짝처럼 버려져 반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안전은 예산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깊은 블랙홀에 빠져버린다. 그러다가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요란스럽게 부산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안전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 사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안전을 확보하는데 소요되는 비용과 저렴하게 건설해야만 하는 경제성은 서로 상충되고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빠듯한 사업비와 같은 예산 부족문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국민들의 생명과 목숨을 담보로 사업을 수행하던 기존 방식을 이제부터라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전관련 예산이 투입돼야만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안전이 더 이상 뒤로 밀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