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전문가 자유칼럼] 열없는 짓
[건설전문가 자유칼럼] 열없는 짓
  • 국토일보
  • 승인 2019.06.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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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건축기술사/변리사 /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산길을 걷다가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대부분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갑니다. 저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가끔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도 합니다. 쓰레기를 주울 때, 주운 것을 버릴 곳까지 들고 갈 때 영 겸연쩍습니다. 내가 수고해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하니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주워도 될 것 같은데 괜히 열없이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쓰레기를 줍는 것에 어떤 심리가 들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왜 그렇게 느끼는지 심리가 궁금합니다.

길바닥을 봅니다. 길바닥마다 시커먼 껌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방금 깐 보도블록에도 흉한 자국을 붙였습니다. 그 지저분한 모습을 바라보면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씹은 껌을 바닥에 뱉을 때 열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시내 길을 가다 보면 보행자용 교통신호등이 있을 곳이 아닌데 설치된 것이 자주 있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곳, 건널목 너비가 좁아 굳이 신호등이 필요 없는 곳에 신호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대개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만 다니는 차가 없으니 그냥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뒤통수는 간지럽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는 차가 별로 없는데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습니다. 저는 대개 그냥 지나갑니다. 이때도 뒤통수가 가렵습니다. 빨간 불일 때 건너면 안 된다고 배운 것이 머리에 박여서 그런지 지나가지만 머릿속이 영 불편합니다. 어느 방송에서, 멀찌감치 숨어서 운전자가 어떻게 하나를 지켜보고, 우직하게 차를 세우고 불이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신호등을 달아 놓고 신호를 지키는지 숨어서 지켜볼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건널목 신호등은 없애고, 한적한 길에는 깜빡이등을 설치하는 게 옳겠습니다. 사람들을 괜히 열없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없다’는 “좀 겸연쩍고 부끄럽다”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나옵니다. ‘열적다’는 사투리이고요.

예전에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여야 국회의원은 특권을 없애겠다는 약속을 많이 내걸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법안은 결국 물거품이 됐습니다. 선거가 지나자마자 자기가 뱉은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죠. 아니 일부러 잊어버렸겠죠? 참 열없는 짓입니다.

그 열없는 짓을 넘어, 요즘 국회에서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갑니다. 국회는 10월 국정감사, 이어서 예산 심의, 내년에는 총선이라 손 놓을 게 뻔합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20대 국회가 법안을 심의할 시간은 지금부터 9월까지 뿐입니다. 내년에도 7,000여 개 법안이 한꺼번에 폐기되겠지요. 법안을 심의하지도 않으면서 새 법안을 계속 제출합니다. 국민이 열을 받습니다.

열없어야 하는 것, 열없을 이유가 없는데 괜스레 열없게 느끼는 것, 잘못된 제도 때문에 애꿎게 열없게 되는 것, 열없어야 하는데 뻔뻔하게도 그러지 않는 것. 그중에서 열없는 짓인데도 열없는 줄 모르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열없는 짓이란 걸 알게 해 줄 수 있을까요. 더 열이 오르면… 다음은 폭발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