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우리가 슈퍼맨?… "건설기계 27종 안전조치 의무 과도하다"
건설업계, 우리가 슈퍼맨?… "건설기계 27종 안전조치 의무 과도하다"
  • 김준현 기자
  • 승인 2019.05.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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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협회,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한 건설업계 의견 정부 제출
노조단체의 ‘원청사 무조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 확대’ 주장 과도
최대 50배 이상 과태료 부과기준 강화 재고 필요
건설현장 외면한 행정편의적 정책 안전겨영 정착에 걸림돌로 작용

[국토일보 김준현 기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 중 건설기계 27개 직종에 대한 원청사의 무조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 강화에 대해 건설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피자 배달원의 오토바이 관리까지 책임지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는 주장이다.

또 최대 50배 이상의 과태료 부과기준 강화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며, 향후 행정편의적인 이런 정책이 건설업 안전경영 정착에 걸림돌로 작용할 거란 우려를 내비췄다.

28일 대한건설협회(회장 유주현)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한 건설업계 의견을 고용노동부에 제출해 이와 같이 피력했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건설사에 과도하게 책임을 부여하고, 처벌만능주의 및 현장 현실을 외면한 행정편의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용부는 건설기계 중 현장에서 설치·해체하는 타워크레인, 건설용리프트, 항타·항발기를 원청사가 안전보건조치 할 기계로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협회는 원청사가 직접 임대계약한 타워크레인, 건설용리프트, 항타·항발기만으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출했다.

원청사가 건설기계 위험요인 점검과 예방조치를 할 전문성과 역량이 없는데도 27개 직종의 건설기계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의무화하라는 것은 건설사에게 슈퍼맨 역할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참고로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르면 건설기계의 안전점검과 수시검사 등은 건설기계소유주가 하도록 돼 있다.

건설업계는 특히 최근 건설노조가 지난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덤프트럭, 레미콘, 굴삭기 등 기계 설치·해체와 무관한 완성된 기계까지 원청사에 관리감독 부여를 요구하는 것은 원청사에게 기계소유주 역할까지 하라는 억지 주장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피자를 주문해 배달받은 고객에게 배달원이 운전하고 온 오토바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부여하는 것 같은 논리”라고 비유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레미콘트럭 사고의 경우 주요 재해원인은 차량청소 시 추락(56.8%)으로 건설작업 현장 외부에서 발생하는데도 건설사에 안전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개정안에는 고용부가 1인 사업자인 덤프트럭 기사 등 27개 직종의 특수형태근로자종자사(특고자)를 건설사의 안전보건조치 및 교육의무 대상에 포함토록 한 내용이 담겨있다.

협회는 특고자와 건설사와의 전속성 및 경제적 종속성이 불분명함에도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 확보나, 사회적 합의 없이 근로자 단체 일방의 주장만을 반영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건설사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대상에 특고자는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건의했다.

아울러 건설사는 특고자에 대한 노무지휘권이 없어 특고자가 교육이수 지시를 거부하거나 미이행할 경우 사업주만 처벌을 받는 비대칭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기계에 문외한인 토목·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건설사에 ‘원동기·회전축 등 위험방지’, ‘기계의 동력차단장치’ 등 건설기계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 의무조항과 건설기계와 무관한 의무조치 사항 등은 삭제해 건설사와 건설기계사업주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건설사 직원에게 기계에 대한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기계의 오작동이나 대형사고 유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내비췄다.

개정안에는 또 고용부가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공사를 현행 120억원 이상 공사에서 2023년까지 5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협회는 중소현장의 경우 급여 등 근로 여건이 열악하고, 과도한 행정관리 업무나 처벌 위험 부담으로 취업 기피 및 잦은 이직이 발생해 구인난에 부담을 겪는 상황에서 안전관리자까지 의무 선임해야 한다면 인력 수급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안전관리자 선임대상 확대 시기를 2년 더 연장해줄 것과 90년대처럼 안전관리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한시적(3~5년)으로 경력자에 대한 교육이수를 통한 안전관리자 자격 부여 제도를 재도입 해줄 것”을 요구했다.

협회가 정부에 제출한 의견 제출서에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건설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정편의적’ 정책이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개정안에는 중대재해로 작업을 중지한 후, 작업재개 신청시 관련 근로자의 의견을 청취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건설업의 경우 작업이 일정기간 중지돼 수십 또는 수백명의 근로자들이 다른 일자리로 옮기게 된다.

건설업계는 작업중지 당시에 근무한 근로자들을 다시 모집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므로 이는 정부의 행정편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협회 관계자는 “작업재개시 작업근로자의 의견 청취 의무를 삭제하고 작업근로자 의견청취가 불가능한 경우 외부 전문가 의견 청취가 가능토록 규정을 명문화하는 것이 건설현장의 실정을 반영하는 합리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에는 또 고용부가 건설사의 경우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 수립 및 이사회 보고·승인 의무 범위를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0위 이내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협회는 의무 범위를 중소 건설사까지 포함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0위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중소 건설사의 경우 시공이나 안전관리 등 각종 행정처리로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의무 부담은 형식적인 규제 절차 신설로 불필요한 행정부담만을 가중시키고 정책실익이 미미한 규제라고 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현행 산안법에도 노사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에서 산재예방 계획을 수립·심의 의결토록하고 있어 과도한 중복규제”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또 고용부가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가 특고자에 대해 직접 교육을 실시하거나 안전보건교육기관에 위탁토록 하고 있다.

협회는 건설기계 직종에 따라 현장 출입 운전원이 매일 또는 부정기적으로 바뀌고, 건설사는 사전에 출입 운전원 파악이 어려워 현장에서 특고자에 대한 자체교육은 물론 위탁 교육이 내실 있는 교육이 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건당으로 보수를 받는 운전원에게 중복적인 교육을 위한 시간 할애 요구는 특고자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며, 건설사도 반복적 교육에 따른 업무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협회 관계자는 “직접적인 시공에 참여하지 않는 건설기계 운전원(덤프트럭, 레미콘트럭 등)에게 매일, 아니면 매주 또는 매월 단위 반복적 교육 실시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설업기초교육 및 외국인근로자 취업교육처럼 특고자 교육을 전문 교육기관으로 대체해 교육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특고자는 현장 출입시 교육이수증을 제시토록 현장실정을 감안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방식이 특고자에 대한 형식적 교육을 배제하고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협회가 제출한 의견서에는 원청사의 처벌만을 강화하는 처벌 만능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건설사의 과태료 부과기준이 현행 대비 1.5배에서 최대 50배까지 강화됐다는 게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용부는 안전책임 강화를 위해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 최소 금액을 100만원으로 설정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20개 넘는 항목의 과태료를 상향하고 있다. 또 안전보건교육은 최대 50배까지 상향하고, 과태료 가중의 산정기간을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대폭 상향했다.

협회는 행정조치 미이행에 따른 제재인 과태료 처분이 사실상 거액의 벌금형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위반횟수 등 위반양태를 고려치 않고 획일적인 최대 과태료 부과 및 과도한 과태료 금액 상향은 규정 준수 유도를 위하는 과태료 취지와 맞지 않아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태료 가중의 산정기간은 타법령에서는 대부분 1년인데도 산안법 개정안에서는 5년으로 강화해 과도한 규제라는 것.

특히 ‘법제처 과징금 부과기준’에 따르면, 과태료 하한선은 법률상 상한금액의 30~50% 이상에서 설정토록 하고 있으나,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금액은 1%~6% 수준으로 크게 낮은 상황이다.

협회는 근로자 스스로의 재해예방을 위한 경각심 제고 차원과 ‘법제처 과징금 부과기준’에 따른 타 법령과의 균형을 위해 근로자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를 상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협회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저감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에 건설사도 안전경영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며 “건설사에 대한 과도한 처벌 및 규제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발주자, 건설사, 근로자 등 모든 건설참여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적정공사비를 지급하는 등 건설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안전관리가 작동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